여성 유니폼 ‘바로 보기’[현장에서/김소영]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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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블랙핑크 노래 ‘Lovesick Girls’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화면 캡처
걸그룹 블랙핑크 노래 ‘Lovesick Girls’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화면 캡처
김소영 사회부 기자
김소영 사회부 기자
“그런 복장을 입고 일한다는 건 상상도 못하죠. 환자도 돌보면서 몸 쓸 일이 얼마나 많은데….”

경기 시흥의 한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7년 차 간호사 A 씨(31)는 6일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최근 걸그룹 블랙핑크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간호사 복장을 두고 한 얘기다. 영상에서 한 멤버는 딱 달라붙는 상의에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다. 높은 하이힐을 신은 데다 빨간 하트가 그려진 ‘간호사 캡’도 썼다.

A 씨가 입은 유니폼을 보면 왜 그가 이런 반응을 했는지 금세 알 수 있다. 그는 반팔 블라우스에 통이 넓은 긴 바지를 입었다. 신발은 굽이 거의 없는 고무 샌들이다. A 씨는 “간호사 캡은 현장에서 구경조차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사실 연예계의 ‘여성 유니폼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2년 전인 2008년 가수 이효리가 자신의 노래 ‘유고걸’ 뮤직비디오 홍보영상에서 엇비슷한 복장을 입고 나와 시끄러웠다. 그때도 신체 부위가 강조된 의상에 간호사 캡을 써 비판받았다.

유니폼을 입는 직군을 승무원이나 경찰 등으로 확장하면 문제는 더 늘어난다. 조만간 다가오는 핼러윈 시즌엔 해마다 노출이 심한 형태로 바꾼 제복을 입은 이들의 사진과 동영상이 소셜미디어에서 숱하게 돌아다닌다. 직무를 원활하게 수행하는 목적을 지닌 의복을 전혀 다른 의도로 이용하는 셈이다.

무엇보다 이런 의상이 논란인 이유는 사회 전반에 무감하게 배어 있는 ‘성적 판타지’ 때문이다. 간호사건 군인이건 그들을 각자의 직업에 충실한 인격체로 받아들이지 않고, 야릇한 상상을 해도 되는 이미지로 소비하고 있단 뜻이다. 이는 해당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의 자존감을 해칠 뿐만 아니라, 통념적으로 해당 직업인의 전문성에 대한 신뢰마저 떨어뜨릴 수 있다. 간호사 김모 씨(30)도 “업무 현장에서 단 한 번도 성적 이미지를 어필하며 일한 적이 없는데, 대중문화를 통해 변질된 시선이 확산돼 간호사를 보며 그런 걸 떠올릴까 봐 걱정스럽다”고 토로했다.

논란이 이어지자 블랙핑크의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는 6일 입장문을 내놓았다. “각 장면들은 음악을 표현한 것 이상의 어떤 의도도 없었다”며 “제작진은 해당 장면의 편집과 관련해 깊이 고민하고 논의 중에 있다”고 밝혔다.

물론 해당 소속사는 실제로 특별한 의도가 없었을지 모른다. 걸그룹의 출연 의상으로 변형 유니폼을 선택해 간호사라는 직업을 대놓고 깎아내리려 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의도 없는 선택’이 어쩌면 더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복장을 입은 걸그룹 역시 여성이란 걸 감안하면, 서로의 자리에서 애쓰는 직업인에 대한 묘사는 더욱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표현의 자유만큼이나 중요한 건, 바로 타인에 대한 존중과 예의다.

김소영 사회부 기자 ksy@donga.com
#여성 유니폼#간호사#블랙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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