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거짓말의 가면을 벗기면[정도언의 마음의 지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7일 03시 00분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진실을 찾아 지키려는 경향이 사람에게 태생적으로 있다고 보시나요? 있다면 의식 세계가 주도할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프로이트는 소망만 충족이 된다면 사람은 진실을 얼마든지 외면한다고 했습니다. 의식보다는 무의식의 힘이 훨씬 더 강력하게 작용합니다.

거짓말의 역사는 길고, 인간의 본성에 속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거짓말은 속이려는 의도로 하는 것입니다. 남을 다른 길로 이끌려는 것이지요. 태도가 진실한 사람이라고 해서 그가 하는 말이 항상 진실인 건 아닙니다. 거짓말의 표정은 다양하며 모습을 바꿉니다.

거짓말로 피해를 안 주면 괜찮을까요? 선의로 했어도 본질은 거짓말입니다. 선한 의도였음에도 가끔은 결과가 비극으로 이어집니다.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적대적인 관계라면 진실을 들어야 할 자격이 상대에게 없다고 쳐서 거짓말을 해도 무관하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법적인 차원은 제쳐 두고 도의적으로 옳지 않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정치·외교 분야에선 거짓말을 주저 없이 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거짓말은 논란과 혼돈의 영역에 삽니다. 그 정체를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이 파악해 대처하기는 어렵습니다. 제 나름의 독해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부분적 진실을 양념처럼 덮은 거짓말이라면 내용의 진실 여부에 집중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히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어떤 목적에서 한 말인지를 분석해야 합니다. 둘째, 세련된 거짓말일수록 정당성을 갖춘 듯한 겉모습을 자랑합니다. 비판적 사고가 부족하거나 관심이 없으면 일견 설득력이 있는 듯 보입니다. 셋째, 거짓말은 아니라도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면 거짓을 말한 것과 같습니다. 숨기려는 의도를 행사했기 때문입니다. 넷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닌, 오히려 상대에게 질문을 던져 거짓말을 방어하는 술책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다섯째,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용어로 거짓말의 실체를 가리기도 하니 신경 써야 합니다.

같은 편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는 거짓말도 있습니다. ‘합동작전’으로 집단의 정체성과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시스템 거짓말’은 화려합니다. 첫째, 뚜렷하고 일관성 있게 되풀이합니다. 둘째, 자신들의 주장이 거짓말임을 내부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셋째, 거짓말인데도 확신을 가지고 주장합니다. ‘분리(分離)’라고 하는 심리적 방어기제를 쓰는 겁니다. 넷째, 거짓말임에도 ‘사회 기강 바로잡기’ 같은 ‘고귀한’ 목적이 있다고 스스로 믿습니다. 다섯째, 논란의 본질이 사회 전반의 관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언급하면서 논리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법의 판단을 피하려고 합니다.

시스템 거짓말의 추진력은 집요하고 강력합니다. 시스템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유리한 이야기를 만들어 근거로 제시합니다. 논리적인 설득력이 있다고 반드시 신뢰할 만한 근거는 아닙니다. 시스템 거짓말은 법과 윤리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즐깁니다.

개인의 거짓말이든 시스템 거짓말이든 어떻게 찾아내고 대처해야 할까요? 의사가 증상에 기반을 두고 진단하듯이 증상에 근거해야 오진을 피할 수 있습니다. 거짓말의 증상으로 열거되는 것들에는 말투나 몸짓의 변화, 표정과 몸의 굳어짐, 애매하게 얼버무리기, 입이나 눈 가리기, 침묵, 사소한 것을 나열해 논점 흐리기 등이 있습니다.

개인의 거짓말과 달리 시스템 거짓말은 분석하지 않으면 거짓말이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여러 사람이 일관성 있게 공개적으로 그렇게 말하고, 지지적인 언론 매체를 활용하면서 나름의 정당성을 체계적으로 반복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에는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위기를 극복하려는 생존 본능의 표현입니다. 하지만 거짓말이 되풀이되거나 과도해지면 자기기만의 함정에 빠집니다. 말재간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면 자신의 말에 취해 그렇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내가 나를 속일 정도의 거짓말이라면 깔끔하고 완벽해야 하고, 허점이 안 보여야 하지만 어렵습니다.

거짓말은 무엇에 대한 방어일까요? 본능적 욕구에 대한 공격, 소망에 대한 도전, 정체성에 대한 위협, 책임질 곤경, 벌 받을 위기, 죄책감, 수치심 등에 대한 반응입니다.

우리 사회를 서구 사회와 비교하면 개인보다는 집단의 가치를 중요시하면서 힘을 다해 지키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파생물로 집단이 주도하는 시스템 거짓말을 흔히 접하게 됩니다. 특정 개인을 둘러싼 문제가 사회 쟁점이 되고 파장이 증폭되면 개인의 거짓말은 더 경직된 형태로 표현됩니다. 그러다가 한계에 달하면 스스로 허점을 드러내는 위기가 닥칩니다. 그러면 거짓말의 주체는 개인에서 집단으로 옮겨갑니다. 집단은 상황을 협업으로 처리하려고 체계화된 거짓말을 되풀이합니다. 악순환의 고리를 돌게 됩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진실#거짓말#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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