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
‘플라잉카’ 有人 시험비행 성공… 미래 교통수단으로 기대 높아져
민관 합동으로 주도권 확보 노력
美·中·獨 등 각국 경쟁도 치열
8월 25일 일본 아이치현 도요타시의 한 도로주행장. 길이 4m, 폭 4m, 높이 2m의 정체모를 물체가 등장했다. 얼핏 보면 자동차 같지만 바퀴가 없고 좌우 네 모퉁이에 8개의 프로펠러가 달려 대형 드론과 비슷했다. 일본 벤처기업 스카이드라이브가 만든 하늘을 나는 자동차, 즉 ‘플라잉카(flying car)’였다.
이날 플라잉카에 탑승한 조종사는 지상 2m에서 약 4분간 4km의 시험장을 한 바퀴 돌아 유인(有人)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세계 각국의 약 300개 기업이 플라잉카를 개발하고 있지만 유인 시험비행에 성공한 기업은 약 10개에 불과하다. 다음 날 일본 언론은 플라잉카의 시험비행 성공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당시 조종사가 취재진에 밝힌 “일반 자동차보다 좀더 시끄러운 스포츠카에 탄 듯한 느낌”이라는 소감도 빼놓지 않았다.
최근 일본에서는 플라잉카 개발 열기가 뜨겁다. 스카이드라이브 같은 벤처기업뿐 아니라 가와사키중공업, 일본항공(JAL) 같은 대기업도 속속 뛰어들고 있다. 플라잉카는 교통체증이 심한 대도시에서는 이동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는 획기적 교통수단, 고령자가 많고 교통 체계가 낙후된 산간오지에서는 재해 시 인명 구조 도구가 될 것이란 기대를 받고 있다.
○ 2023년 에어택시 서비스 출시 목표
지난달 29일 후쿠자와 도모히로(福澤知浩·33) 스카이드라이브 대표를 화상회의 서비스 ‘줌’으로 만났다. 안경을 낀 그는 아직 대학원생 정도로 보였다. 2010년 도요타자동차에 입사해 부품 조달을 담당했지만 ‘혁신적인 탈것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2018년 7월 당시 1인 기업이었던 스카이드라이브를 설립했다고 설명했다.
후쿠자와 대표는 “일본은 자동차 강국이지만 항공·벤처산업 분야에서는 서구 선진국에 비해 뒤처져 있다. 플라잉카는 항공과 자동차의 중간에 있어 나 자신은 물론이고 일본 사회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도요타에서 배운 ‘모노즈쿠리(もの造り)’, 즉 장인정신을 기반으로 한 일본 제조업 문화를 플라잉카 개발에도 접목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2년이 흐른 지금 스카이드라이브는 약 50명의 직원을 보유한 중견 벤처기업으로 성장했다. 직원 상당수는 후쿠자와 대표보다 나이가 많은 자동차·항공 분야 기술자들이다. NEC 등 일본 10개 기업으로부터 약 39억 엔(약 430억 원)의 투자도 받았다.
후쿠자와 대표는 “지난해 12월부터 유인 비행의 안전성을 테스트해 왔다. 플라잉카가 갑자기 추락할 것에 대비해 에어백을 달았고 배터리가 방전되기 전에는 알람이 울리도록 설계했다”며 “안전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플라잉카를 일부 부품이 고장 나더라도 비행하는 데 큰 지장이 없는 일반 비행기처럼 만들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스카이드라이브는 2023년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 해안에서 약 5∼10km 구간을 택시처럼 운영하는 ‘에어택시’ 서비스를 선보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비슷한 시점에 플라잉카 판매도 시작할 계획이다. 대당 가격은 3000만∼5000만 엔(약 3억3000만∼5억5000만 원). 후쿠자와 대표는 “다소 비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면 대당 약 300만 엔으로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日 대기업도 속속 진입
일본 대기업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가와사키중공업 역시 올해 5월 플라잉카의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가와사키 제품의 특징은 플라잉카에 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일반 자동차와 유사한 엔진을 사용한다는 데 있다. 배터리를 쓰는 스카이드라이브와 결정적 차이점이다. 당연히 배터리를 사용하는 것보다 힘이 좋고 오래 비행할 수 있다. 길이 7m, 폭 5m, 높이 2m인 가와사키의 시험 기체는 200kg 이상의 화물을 탑재하고 100km 이상 이동할 수 있다.
JAL, 전일본공수(ANA) 등 대형 항공사도 속속 뛰어들었다. JAL은 물품을 운반하는 소형 드론을 1단계로 시작해 최종적으로는 원격조종이 가능한 플라잉카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ANA는 2025년 예정인 오사카 세계박람회에서 플라잉카를 통한 여객 서비스를 선보이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자사의 기존 산업을 활용해 플라잉카 유관 산업으로 진출하겠다는 속내를 밝힌 대기업도 많다. 전자전기 대기업 NEC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인 자사의 전자파 모니터링 및 무인(無人) 기술을 활용해 플라잉카 운항관리 체계를 개발할 뜻을 밝혔다. 정유사 ENEOS홀딩스는 플라잉카의 충전소 및 이착륙 거점 정비 사업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도쿄해상일동화재보험은 플라잉카 관련 각종 보험을 준비하고 있다.
○ 각국 시장선점 경쟁 치열
세계 플라잉카 시장을 선도하는 나라로는 미국과 중국이 꼽힌다. 광활한 국토를 보유해 플라잉카를 이용하면 도로 철도 등 기존 교통체계를 이용할 때보다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 차량 공유업체 우버는 2023년부터 ‘하늘의 택시’ 우버에어를 출시할 계획을 밝혔다. 기존의 지상 차량 호출 서비스와 우버에어를 결합해 땅과 하늘을 모두 우버의 영토로 만들겠다는 야심이 대단하다. 지상과 공중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으면 전 세계가 일일 생활권이 되는 날도 머지않다는 의미다.
독일 벤처기업 볼로콥터는 지난해 10월 조종사가 탄 플라잉카를 싱가포르의 고층 빌딩 사이로 띄우는 데 성공했다. 볼로콥터는 싱가포르 정부와 함께 플라잉카의 전용 이착륙 인프라 및 항공관제 체계를 개발하고 있다. 2023년 도시국가 싱가포르에서 본격적인 에어택시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최근 독일 자동차업체 다임러도 볼로콥터에 투자했다. 또 다른 독일 벤처기업 릴리움은 약 300km를 50분 이내에 날 수 있는 5인승 수직이착륙기를 2025년부터 상업 운항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세계 드론 제조사 중 ‘유인(有人) 드론’ 분야에서 가장 앞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중국 이항 역시 플라잉카 시장의 선도 기업으로 꼽힌다. 이항은 2016년 최대 100kg을 실을 수 있는 유인 드론 ‘이항184’를 공개했다. 올해 1월에는 중국민용항공총국(CAAC)으로부터 드론택시 시범 운영자로 선정됐다. 이항 역시 2023년부터 광저우에서 상용 서비스를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도요타는 올해 초 플라잉카를 개발하는 미국 벤처기업 ‘조비에비에이션’에 약 4억 달러를 투자했다. 세계 최고의 제조업 생산 체계를 갖춘 도요타에 조비 측의 플라잉카 기술을 접목해 플라잉카 기체를 빠른 시일 내에 대량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중국 최대 민영자동차 회사 지리 역시 2017년 미국 플라잉카 개발사 ‘테라푸지아’를 인수했다. 테라푸지아는 땅에선 자동차, 하늘에선 비행기가 되는 ‘트랜지션’이란 플라잉카를 개발하고 있다.
○ 제도정비 등 과제 산적
플라잉카 같은 하늘을 나는 교통수단 산업은 ‘도심항공모빌리티(UAM·Urban Air Mobility)’로도 불린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세계 UAM 시장 규모가 2040년 1조5000억 달러(약 180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시장의 성장 속도가 빠르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지만 제도 정비와 안전성 확보, 자동차 항공기 등 기존 교통수단과의 연계 등 과제도 많다. 일각에서는 2023년 상용화는 다소 무리가 아니겠느냐는 우려도 조심스레 제기한다. 특히 플라잉카 전용 배터리 충전소나 이착륙장 등 인프라를 마련하는 데 플라잉카를 개발하는 것 이상의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플라잉카끼리 충돌하지 않는 항법 체계를 갖추는 데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기존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어떤 상태를 ‘안전’이라고 판단할지도 모호하다.
기자의 이런 우려에 후쿠자와 대표는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몇 년 안에 다 처리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정부와 주요 지방자치단체가 매우 협조적이다. 모든 과제를 다 끝내고 2023년 에어택시 서비스를 선보일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2018년 ‘공간 이동혁명을 향한 관민 협의회’를 만든 일본 정부는 경제산업성 국토교통성 등 관계 부처와 관련 기업이 참여한 회의를 주기적으로 열고 있다. 후쿠자와 대표는 “2023년 플라잉카를 상용화한다는 계획은 우리 회사가 아닌 일본 전체의 꿈”이라고 말했다.
1910년 미국 자동차왕 헨리 포드는 휘발유차 대량생산 체제를 구축했다. 110년이 흐른 지금 이제 자동차는 하늘을 날 준비를 하고 있다. 후쿠자와 대표와의 화상 인터뷰를 마치며 “한국 역시 이 시장에서 뒤처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뇌리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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