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유공자 예우법’ 유감[횡설수설/서영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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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대학생, 특히 운동권 학생들은 군대 가기를 꺼렸다. 군사독재정권의 ‘군바리’가 되기 싫기도 했지만 군=강제징집=최전방으로 통하던 무서운 시절이었다. ‘녹화사업’이라 하여 학원 프락치 활동을 강요당하기도 했다.

▷당시 ‘동 뜬다’는 은어가 돌았는데 순번을 정해 가두시위의 주동자로 나서는 것을 뜻했다. ‘동’은 시위의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현장에서 체포됐다. 당시에는 폭력행위특별법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으면 군대에 갈 자격이 박탈됐다. 병역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1986년 1200여 명이 구속된 건국대 점거농성 사건 때는 병역면제 요건에 미달하는 집행유예 3개월이 무더기로 선고됐다. 그런데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한시적으로 3개월 집유도 병역을 면제해줬다. 뛸 듯이 기뻐하던 주변 친구들이 많았다.

▷우원식 윤미향 우상호 등 여당 의원 20명이 민주화운동 당사자와 그 가족에게 교육 취업 의료 금융 등의 혜택을 주는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을 추진하고 있다. 지원 대상은 2000년 설립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인정받은 사람 중 사망자, 행방불명자, 상이자(장해등급 판정을 받은 자)와 그 가족이다. 우 의원은 총 829명이라며 전태일, 박종철, 이한열을 예로 들었지만 국회예산정책처의 법률안 비용추계서는 수혜 대상이 가족을 합해 2021년 3753명에서 2025년 3792명으로 늘어날 거라고 추산한다.

▷이 법안이 알려지자 민주당의 ‘셀프 특권’ 법안이란 비판이 쏟아진다. 특히 가뜩이나 ‘공정’을 중시하는 청년세대에게 입시와 취업에서의 특혜는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민주화 유공자들에 대해선 이미 명예회복과 보상이 이뤄져 왔다. 여권 고위층에도 억대의 보상금을 받은 이들이 적지 않다. 반면 신청자격이 충분하지만 보상 신청을 사양한 이들도 있다. 그중 한 명인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은 “지식인으로서 민주화운동을 한 거면 충분하다. 국민 세금으로 보상을 받는다면 내 명예는 어떻게 되는가”라고 말한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유명을 달리한 분들과 그 가족이 겪는 고통에 대해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과유불급이 된다면 민주화운동의 순수한 뜻을 욕보이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민주화는 거리에서 최루탄 가스를 마시며 독재 타도를 외쳤던 수백만 시민이 함께 만든 것이다. 그들이 예우나 보상을 바라는가.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싸웠고 자긍심과 보람, 인간적인 성장을 얻었다면 그게 보상 아닌가. 생각 짧은, 혹은 흑심 있는 국회의원들이 민주화 인사들을 욕먹이고 있는 건 아닌지 안타깝다.

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
#민주유공자#예우법#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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