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는 추석이었다. 남녀노소,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한마음이 된 기간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였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연휴가 길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코로나19로 몸과 마음이 지친 터에 오랜만에 제대로 쉴 수 있는 기회를 맞았는데 이를 마다할 사람이 있겠는가.
한국 여성과 결혼한 필자는 이번 추석에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친척들은 모두 처가의 가장 웃어른인 장인어른 댁에 모였다. 아내의 이모, 이모부들까지 저녁자리에 함께했다. 사람이 많아 여자들은 부엌에서, 남자들은 거실에서 밥을 먹게 됐다. 주반찬은 전이었다. 추석 때는 장모님이 혼자서 그 많은 전을 다 준비하거나 이모님 중 한두 분이 오셔서 같이 준비하신다. 추석이면 빼놓을 수 없는 송편도 함께했다. 집에서 만들지는 않았지만 마트에서 파는 송편을 장모님이 구해 놓으셨다.
한국 생활을 하지만 일부 외국인 사위들은 송편을 먹지 못하고 추석을 보내는 경우도 보았다. 집에서 송편을 만들지 않는 집이 많은 데다 즐겨 먹는 사람이 없다면 떡집에서 사지 않고 그냥 ‘송편 없는 추석’을 보낸다고 했다. 저녁식사를 마무리하고 나자 오랫동안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에게서 안부인사 메시지가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필자는 이들의 추석 풍경을 흥미롭게 봤다. 한국인 남자와 결혼한 외국인 누나들은 전부 추석에 전을 만들었다고 한다. 어떤 누나는 추석에 전을 만드느라 팔이 아플 정도였다고 했다. 한국인 친구들은 추석에 전을 먹기는커녕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신기한 건 한국에 정착해 사는 외국인일수록 한국인들보다 더 전통에 맞게 추석을 보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나는 한국에 와서 16년 동안이나 ‘동지(冬至)’의 풍습이 정확히 어떤 건지 모르고 지냈다. 동지 풍습을 알게 된 것은 한국인과 결혼한 러시아 누나 덕분이었다. 지난겨울 안부차 통화한 그 누나는 팥죽을 만드는 중이라고 했다. 내가 “갑자기 무슨 팥죽이냐”고 묻자 누나는 “웬 팥죽이라니! 동지 때문이지!”라고 했다. 처음에는 누나의 그 독특한 러시아 억양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옛 소련 사람이다 보니 말 그대로 아는 사람을 동지(同志)로 지칭해서 아픈 친구를 위해 죽을 만든다는 것인지 알쏭달쏭했다. 통화 마지막에야 누나가 동지와 팥죽에 대해 설명해줬고 나는 오해를 풀 수 있었다. 한국의 절기 중에서도 동짓날에는 팥죽을 먹는 풍습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걸 내내 모르고 살다가 한국인도 아니고 외국인을 통해 알게 되다니!
한국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급속도로 발전하며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높였다. 이후 여러 계기로 많은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정착했고 국제결혼 사례도 크게 늘었다. 지금은 다문화시대가 본격 열리면서 이런저런 걱정도 많다. 5000년을 ‘한민족’으로 살던 이 땅에 수많은 외국인이 와 있고 외국 문화가 들어오면서 한국의 옛 전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전체 인구 대비 외국인 비율로 따지면 한국의 외국인 비율은 선진국 중 낮은 쪽에 속한다. 그런데도 아직까진 다문화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 우려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한국 정부기관과 시민단체는 단일민족 사회에서 다문화 사회로의 변화를 순조롭고 평화롭게 진행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필자 주변의 사례만으로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한국의 다문화는 반(反)이민 갈등을 겪는 프랑스나 오스트리아보다는 오히려 아이슬란드처럼 비교적 문제없이 진행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지켜 나가려는 외국인들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특히 한국에 사는 어떤 외국인을 보면 이들이 한국의 고유문화를 소중하게 지키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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