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곳은 없다, GPS가 있는 한[이기진 교수의 만만학 과학]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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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지난해 대서양 근처 프랑스 생나제르 바닷가 연구소에서 지낸 적이 있다. 깊은 잠이 드는 새벽 ‘띵동’ 하면서 기습적으로 동네마트의 안내 문자가 날아오곤 했다. “삼겹살 특가 100g 2364원, 생물고등어 5000원….” 한 동료 교수는 올 8월 15일 조카들과 아무 생각 없이 서울 광화문의 책방에 들렀다가 보건소로부터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제는 세상 어디를 가도 휴대전화를 들고 있다면 세상이 나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세상은 점점 더 좁아지고 투명해지고 있다.

내 작은 움직임 역시 세상과 연동되고 있다. 예전처럼 숨을 곳은 이제 없다. 스마트폰의 전원이 켜져 있는 순간은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세상과 연결된다. 내 위치 정보를 줘야 세상으로부터 정보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전원을 끈다면 이는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이런 투명한 네트워크의 핵심엔 인공위성을 이용한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 있다. GPS는 지구상 어디에서든지 자신의 위치와 속도, 시간을 알 수 있는 시스템이다. 시간 역시 스마트폰을 통해 한 치의 오차 없는 시간을 전 세계에 사는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다.

현재 지구에는 24개의 GPS 인공위성이 위치 정보를 제공하는 중이다. 이 위성들은 고도 약 2만 km 상공에서 약 12시간에 한 번씩 지구 주위를 공전한다. 이 위성 안에는 10만 년 동안 1초의 오차를 갖는 아주 정밀한 4개의 원자시계가 들어 있다.

GPS 위성들은 전파를 통해 시계의 정확한 시각과 위성의 정확한 위치를 지상의 수신기로 보내준다. 전파가 수신기까지 오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시간의 차이를 가지게 된다. 이 시간의 차이에 빛의 속도를 곱해주면 지상의 수신기에서 인공위성 간의 거리를 구할 수 있다. 물리학적으로 거리는 시간에 속도를 곱하면 얻을 수 있는 값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4개의 위성으로부터 나오는 전파의 시간 정보를 분석하면 공간상 한 점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이 오차는 30m까지 발생할 수 있지만 군사용 GPS는 오차 범위를 1cm까지 줄일 수 있다.

GPS는 1973년 군사 목적으로 미국 국방부에서 개발한 시스템이다. 1983년 대한항공 여객기가 소련의 영공 침범으로 격추되자, 당시 미국 정부는 민간에서의 GPS 사용을 허락하기 시작했다. 2000년 이후에는 미국 정부가 정책상 고의적으로 잡음을 보내는 것까지도 중단함으로써 민간용 표준위치 서비스의 정밀도가 30m 이하로 정밀해졌다. 이후 GPS는 차량, 교통, 범죄, 해양, 항로, 항공, 측량, 지진 감지, 인명 구조 시스템 등 우리 생활 곳곳에 스며들었다. 이제 GPS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2024년 차기 위성인 무궁화위성 6호를 띄우면 한국형 정밀 GPS 보정 시스템을 갖추고, 2035년 7기의 항법위성을 띄우면 독자적인 GPS 시스템을 갖추게 된다. 늦은 감이 있지만 다른 나라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위치 시스템을 운영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마치 지구상에서 대한민국의 정확한 위치를 자리매김하는 것처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gps#코로나19#휴대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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