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아영 문학평론가상실이 주는 안도감이 기요아키를 위로했다. 그의 마음은 언제나 그런 식으로 움직였다. 잃어버리리라는 공포보다도 실제로 잃어버렸음을 아는 편이 훨씬 견디기 쉬웠기 때문이다. ―미시마 유키오, ‘봄눈’ 중
얼마 전 초역된 미시마 유키오의 마지막 소설 ‘풍요의 바다’ 1권 ‘봄눈’에 나오는 구절이다. 다이쇼 시대가 시작된 일본의 1912년, 천황의 권역에서 막대한 부와 권력을 누리는 귀족사회의 한복판에 젊고 아름다운 두 남녀 기요아키와 사토코가 있다. 오로지 감정만을 위해서 살아가겠다는 열아홉의 미소년 기요아키는 사토코를 갈망하면서도 완벽한 형식에 집착하며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거짓으로 가득한 편지를 보내고, 마음을 숨기고 뒤집고 꼬아서,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없도록 만든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기요아키가 사토코를 향한 마음을 인정하게 되는 계기는 두 사람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게 되었을 때다. 천황이 사토코와 황족의 결혼에 대한 칙허를 내리고 사랑이 금기이자 위반이 되자, 기요아키는 그제야 진실을 증명하려는 듯 사토코와의 깊은 관계에 얽혀 들어가고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기요아키는 완벽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자신의 의지로 사랑을 일구려 움직이지만, 마쓰가에 후작 집안과 아야쿠라 백작 집안이 천황과 얽혀 있는 긴 역사 안에서 그 의지는 그저 무상한 것이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안도하는 마음이란 실패에 대한 방어기제이자 연약한 자기보호 본능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자각이 비로소 의지를 추동하기도 하고, 그렇게 추동된 의지가 오히려 비극을 몰고 오기도 한다. 이미 잃어버렸음을 알았을 때 비로소 찾기 시작하고, 원하는 것을 손에 넣자마자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는 모순. 아름다움은 무상하게 사라지고 역사는 무정하게 흘러간다. 그런 비겁함과 덧없음과 아름다움이 한데 뒤엉겨 있는 형식이 소설이자 인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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