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바위가 있는 곳이면 흔히 볼 수 있는 게 따개비다. 손톱만큼 작은데도 접착력 하나는 어찌나 강한지 발로 차도 떨어질 줄 모른다. 그래서 전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데, 흔한 것에 비해 별 쓸모가 없다. 몇몇 음식 맛을 내는 것 외에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따개비를 무려 8년이나 연구한 사람이 있다. 세상에 무슨 할 일이 없어 이걸 8년이나 연구했을까?
그런데 이 ‘할 일 없을 것 같은’ 사람이 의외다. 진화론을 내놓은 찰스 다윈인 까닭이다. 다윈이 따개비 연구에 8년이나 쏟아부었다고? 그렇다. 그래서 다윈의 전기작가들과 과학사가들이 무척 궁금해 했다. 유명한 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도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다윈이 따개비에 몰두한 1846∼54년은 출간되자마자 엄청난 논란을 부른 ‘종의 기원’ 출간 시점(1859년)과 멀지도 않다. 그가 이 책의 핵심인 자연선택 개념을 20여 년간이나 숙고한 걸 감안하면 아주 중요한 시간에 딴 일을 한 것이다.
너무 머리가 아파 잠시 한눈을 팔았던 걸까? 하지만 한눈판 것 치고 결과가 보통이 아니다. 1851년과 1854년에 출간한 두 권의 책은 1000쪽이 넘는다.
왜 그랬을까? 과학저술가 데이비드 콰먼은 ‘야생에 살다’라는 책에서 다윈의 이런 ‘외도’에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진화론이라는 엄청난 이론을 발표하기 위한 사전작업이었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당시는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었던 빅토리아 시대였다. 게다가 다윈은 그리 이름 있는 학자가 아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유명하지도 않은 사람이 상식에 반하는 주장을 하면 어떨까. 기다렸다는 듯 박수를 쳐줄까? 반대다. 다들 무시하고 외면한다. 그가 발표한 내용을 보기보다 인지도나 출신을 본다. 다윈도 이걸 알고 있었기에 자연선택 이론을 떠올린 후에도 20여 년이나 묵혔고 그것도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가 같은 생각을 가졌다는 편지를 보내오자 서둘러 발표했다.
사교적인 편이 아니었던 다윈은 나름대로 ‘전략’을 짠 듯하다. 따개비 프로젝트로 학계의 신뢰를 먼저 얻고자 했던 것이다. 그의 판단은 옳았다. 책을 출간한 후 극소수이긴 했지만 그를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생겼고 이후 큰 도움이 되었다. 굴드에 따르면 다윈은 따개비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명백한 ‘진화의 증거’를 발견했음에도 슬그머니 넘어가기도 했다. 더 큰일을 위해 섣부르게 공개하지 않았다. 굴드는 이걸 ‘다윈의 지연(darwin‘s delay)’이라고 했는데 미래를 위해 참고 견디는 인내심을 잘 발휘했다는 뜻이다.
다윈이라고 따개비를 연구한 8년이 재미있기만 했을까? 지루하고 따분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걸 이겨내며 미래를 위한 디딤돌을 놓은 덕분에 큰일을 해낼 수 있었다. 사실 무엇이 그렇지 않겠는가. 공부든 기술이든 사업이든 지루하고 따분한 과정을 이겨내며 토대를 만들어야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