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광장 막은 권위주의 상징 차벽
공권력, 집회시위의 자유 봉쇄할 우려
광장-도심 폐쇄는 행정편의주의일 뿐
방역과 기본권 충족할 방안 만들어야
차벽이 돌아왔다. 해묵은 관행으로 내쳐지고 허물어진 옹벽 아니던가. 국무총리가 나서 코로나 방어선으로, 생명의 울타리로 추켜세웠으니 꽤나 화려한 부활이다. 개천절에 광화문 하늘이 열리자 땅을 호령했다. 한글날에는 세종대왕과 맞짱을 떴다. 수만 명은 너끈히 운집할 공간에 압도적 위용으로 자유의 움직임을 차단했다. 차벽이 오메가라면 알파는 불법집회 딱지다. 1000명이든 100명이든 10명이든 경찰은 닥치는 대로 불법을 선언했다. 이쯤 되면 1인 시위도 버틸 재간이 없다. 자동차도 필히 멈춰야 한다.
경찰은 해명도 설득도 아닌 ‘으름장’을 이렇게 표현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소환이었다. 소수가 모이면 결국 다수가 되며, 바이러스 방출은 필연이다. 전국 방방곡곡에 바이러스를 뿜어 K방역을 무력화시킬 거다. 현행범 체포와 면허증 취소를 각오하라! 판례도 들먹였다. 5년 전 민중 총궐기의 폭주를 차벽이 막아 세웠고 법원이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했다는 거다. 수긍이 간다. 경찰 추산 6만 명, 주최 측 추산 13만 명이 모인 ‘대규모 집회’였으니 말이다. 지금은 어떤가. 언제부터 우리는 100명, 10명도 대규모 집회라 불렀나.
엉터리 논리다. 확진자를 쏟아낸 8·15집회 때와는 달리 법원은 집회·시위에 가처분신청을 1건도 인용하지 않았다. 9대가 참가하는 ‘차량시위’만을 그것도 제약을 걸어 허가했다. ‘고삐 풀린 망아지’ 격인 전광훈 목사도 광장에 없다. 과연 불법으로 규정된 이 광장에 누가 모일 수 있을까. 태극기를 든 60대, 70대 노인들이? 전광훈 목사와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하려는 장년 열혈 전사들이? 모래성 논리라는 것은 경찰 스스로가 알고 있을 거다. 차벽에 의존해야만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허수아비 경찰은 아닐 테니. 그럼 경찰은 대체 왜 이러나.
과잉 충성이다. 정부와 여당 눈치 보기의 달인이 됐다. ‘공권력이 살아 있음을 보이라’는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주문이 주술을 걸었다. ‘작전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지시에 경찰은 전열을 정비했다. 권위주의의 상징인 차벽 소환은 이렇게 작전 치르듯 이뤄졌다. ‘방역과 경제’도 ‘방역과 기본권’도 모두 두 마리 토끼가 된다는 사실을 망각한 국가 지도자, 이들의 무책임이 부른 사달이었다. 이 사달에 가치는 고꾸라지고, 대한민국은 좌와 우를 떠나 혼돈에 휩싸였다.
공공의 적을 만들어 위기를 탈출하는 방책은 정부 여당의 단골 메뉴다. 우한 중국인이 신천지 교인으로, 이태원 클러버가 사랑제일교회 교인으로 바뀌었을 뿐 논리는 같다. 눈엣가시라고 할 만한 전광훈 목사가 활개를 치자, 사랑제일교회 전체를 묶어 ‘공공의 적’ 리스트에 넣었다. ‘광화문 관련 확진자’는 일반명사가 되고 통계분류 체계가 되어 매일 오후 8시, 9시 국민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광화문 집회=감염증 확산’이라는 등식의 기원이다. 합리적이고 현명한 시민이라도 당해낼 재간이 없다. 집단적 비합리성이 고개를 드니 집회·시위를 허가한 판사 탄핵 20만 명 청원도, 차벽 설치 옹호 56% 여론도 거침없이 만들어진다.
문제는 정부 여당의 낙인찍기 전략이 고도의 사회적 비용을 수반한다는 점이다. 국민의 기본권 침해가 우려되고 헌법적 가치가 흔들리면서 나라는 극단적 효용주의의 덫에 걸렸다. 미래 세대에 물려줄 자산에 가치는 사라지고 생존과 효용만 가득하다. 감염병이 지속되는 한 이렇게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의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과 미래 세대에 돌아온다.
좌와 우를 넘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 서울시, 경찰의 ‘무관용 원칙’에 대해 이달 8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는 기본권 침해를 우려하는 성명을 냈다. 인권 활동가들은 아무리 보수단체가 미워도 집회 금지의 명분이 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1인 시위마저 막는 공권력 행사가 집회·시위의 자유를 원천봉쇄할 거란 우려다. 같은 맥락에서 유엔 집회·결사 특별보고관은 “공중보건 비상사태가 권리 침해의 구실로 이용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현재처럼 방역 단계와 상관없이 1년 가까이 광장과 도심을 일괄적으로 폐쇄하는 것은 행정편의주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광장과 촛불로 집권한 정부가 집회·시위의 자유를 지킬 의지가 없음을 자인하는 꼴이다. 전대미문의 코로나19 사태는 강력한 거리 두기를 요청하지만, 역으로 사회적 연대는 이를 가능케 하는 집회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태스크포스를 구성하자. 방역과 기본권,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지속 가능한 계획을 도출해 달라. 그렇게 헌법과 인권을 존중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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