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린 사실이 2일 확인됐다. 이 사건이 다음 달 치러질 미국 대선과 앞으로의 미중 관계에 어떤 변화와 도전을 가져올까.
일부 미국인은 이 사건을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연기’를 위해 의도적으로 조작한 음모론으로 보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들통 날 경우 선거는 바로 끝장이기 때문이다. 또 74세로 고령인 트럼프 대통령이 목숨을 걸고 고육계(苦肉計)를 사용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 결정적으로 4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2주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가 완치돼 복귀했지만 영국 정치권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 사례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흘 만에 퇴원했다. 그가 백악관에 돌아와 처음으로 한 일은 미국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마스크 벗기였다. 그리고 국민들을 향해 “코로나19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곧이어 선거운동을 다시 시작했고, 마스크도 쓰지 않고 지지자들과의 대면접촉을 늘렸다.
그런데 백악관은 이 와중에도 퇴원 후 열흘이 다 되도록 대통령이 음성으로 되돌아갔는지 여부를 확인해 주지 않았다. 비록 주치의가 “전염성은 없다”고 밝혔지만 음성 판정을 확인한 뒤 외부 활동을 재개하는 것이 정상적인 자세다. 백악관 측은 12일(현지 시간)에서야 트럼프 대통령의 음성 판정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적어도 며칠 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승리에 눈이 멀어 대통령으로서 코로나19에 대해 취해야 할 엄격함과 신중함을 잃은 것이다.
미국은 현재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한 나라 중 하나다. 9일 하루에만 신규 확진자가 5만7000명을 넘을 정도다. 그런데 미국 현직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민들에게 코로나19를 무시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서 “신이 멸망시키려는 자들은 반드시 먼저 미치게 만든다”는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미국 국민들은 현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에 걸린 것에 대해 ‘동정’보다는 ‘책임’을 묻는 여론이 더 크다. ABC방송과 워싱턴포스트(WP)가 11일 발표한 최신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42%)은 여전히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54%)에 10%포인트 이상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상황이 나빠질수록 미국 정치가 더 혼란스러워지고, 공화-민주 양당 간 충돌이 첨예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백인우월주의 단체 ‘프라우드 보이스’는 최근 조직원들에게 무기를 비축하고 ‘남북전쟁’을 준비하라는 위험한 발언을 쏟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보수 세력 집결을 위해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 지명도 강행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 내 정치가 흉흉해지면 동아시아 안보까지 위태로워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책임 회피 대상으로 삼아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부르는 등 모욕적인 말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자신만이 중국에 대응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때리면 때릴수록 중국은 미국과 타협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미국 전략 공동체는 중국이 코로나19 조기 수습에 성공해 국가적 역량에서 미국을 추격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으려 할 것이다. 미국이 최근 인도태평양 사령부의 군사적 우위를 이용해 대중(對中) 군사 위협을 강화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게다가 미국은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대만 홍콩 신장 문제로 중국을 압박하려는 시도도 확대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과 중국은 무역, 과학기술, 사회, 문화 등 전 분야에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와 미국 내 정치적 상황이 겹쳐 워싱턴과 베이징의 관계 악화를 더 가속화하고 있다.
다음 달 3일 미 대선 결과는 동아시아 형국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 미중관계는 어려워진다. 바이든이 승리하더라도 미중관계가 빠르게 개선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광기로 치닫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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