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숙청이 일상화된 곳이다. 숙청은 한 명으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 명이 체포되면 그와 연관된 인물들이 줄줄이 함께 체포돼 조사를 받는다.
이런 체포는 신속하게 진행된다. 과거 사례를 봤을 때 유력 권력자 한 명이 잡혀 처형될 정도면 그와 연관된 인물들도 체포되고, 풀려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함께 처형되거나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다. 그러니 누가 끌려갔다는 소문이 퍼지면 ‘곧 나도 잡혀갈 것’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하곤 한다. 권력자와 연관된 사람들은 대체로 돈과 비호 세력이 많다. 이 때문에 일단 숨어버린 뒤 필사적으로 탈출하면 체포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숙청 위기에서 한국까지 온 고위급이 없는 것을 보면 탈출에 성공한 경우도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왜 그럴까. 그만큼 주변에서 눈치 챌 틈 없이 여러 명의 체포가 전광석화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지시가 떨어지면 군사작전처럼 시간과 분까지 정해 체포가 마무리된다. 체포에 응하지 않고 반항하거나 탈주하려 할 경우 현장 사살도 가능하다.
이런 체포 작전이 완벽하게 진행되려면 고도로 전문화된 체포 전담 부대가 있어야 한다. 아직 한국에는 북한의 숙청 소식만 전해질 뿐, 김정은의 손발이 돼 이를 집행하는 부대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다.
그 부대가 바로 ‘홰불 체포조’다. 북한에선 ‘횃불’을 ‘홰불’이라 쓴다. 정식 명칭은 국가보위성 전투기동부 소속 특수작전소조다. 이들은 출동할 때 버스 앞 유리 상단에 시뻘건 횃불에 노동당 마크가 그려진 특별통행증을 붙이고 있다. 밤에 통행증의 횃불과 당 마크가 빛을 내뿜는다 해서 북에선 횃불 체포조라 부른다.
이들이 탄 차량은 모든 교통초소와 차단초소를 검문이나 정차 없이 통과할 수 있다. 김정은 경호부대인 974군부대가 경비를 서는 중앙당 청사와 중앙당 최고위 간부들의 저택 차단초소도 횃불 마크가 붙은 차를 막을 수 없다.
이런 차량들이 한국의 소방차나 구급차가 도로를 내달리듯 최고 속력으로 바람을 몰고 달려갈 때면 내막을 아는 사람들은 어디서 또 줄초상이 나나 싶어 오금이 저린다.
체포조는 차량부터 구별이 된다. 이탈리아 유명 차량 생산기업 ‘이베코(IVECO)’ 마크가 앞에 붙은 짙은 선팅을 한 버스를 타고 다닌다. 이베코 브랜드는 북한에선 보기 드물다. 북한이 어떻게 대북제재를 피해 이런 버스를 들여가는지는 비밀도 아니다. 중국인 명의로 벤츠나 아우디를 비롯한 각종 고급 차량을 구입해 중국까지만 가져오면 된다. 중국 정부의 묵인이 있기 때문에 중국에서 북한으로 들여가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국의 협조가 있는 한 차량이나 사치품 등에 대한 대북제재는 사실상 허울뿐인 셈이다.
횃불 체포조 규모는 100명 정도로 알려졌다. 20명이 한 개 조로 구성되며, 체포하는 인원수에 따라 몇 개 조가 출동할지가 결정된다. 직접적인 출동 명령은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국가보위상이 내린다. 조원들은 무술 유단자들로 구성됐고, 전례는 없지만 만약 특정 지역에서 소요가 일어날 경우 즉각 투입돼 체포하는 임무도 수행하게 된다.
위세가 하늘을 찌르던 사람도 횃불 체포조 차량이 들이닥치는 순간 고양이 앞의 쥐 신세가 돼 기가 죽는다. 워낙 높은 간부들을 많이 체포했기에 체포조 성원들의 태도는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다고 한다. 당정군의 최고위급 권력자도 영장조차 없이 연행되는 일이 일반적이다. 조금만 동작이 굼뜨면 발로 차고 뺨을 때리며 끌고 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들이 출동해 잡은 사람이 복직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설사 복직하더라도 김정은의 명령에 따르는 체포조에 보복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간혹 체포조가 떴다는 정보를 일찍 접하고 잠적하는 이도 있지만, 하루 이틀 버티기가 어렵다고 한다. 북한에선 체포에 관한 한 이들이 최고의 프로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10일 성대하게 연 노동당 창건 75주년 퍼레이드에서 김정은은 명품 시계를 번쩍이면서 인민에게 감사하다며 울먹였다. 하지만 번쩍번쩍 노동당 마크를 달고 열심히 사람들을 잡아가는 횃불 체포조 같은 존재들이 없었다면…. 감사를 받을 인민이 북에 남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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