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유혹하는 불법 렌터카 대여[현장에서/전채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15일 03시 00분


전남 화순 교통사고 사망자의 유족이 5일 올린 청와대 국민청원.
전남 화순 교통사고 사망자의 유족이 5일 올린 청와대 국민청원.
전채은 사회부 기자
전채은 사회부 기자
“별일 아니에요. 다들 해요.”

산전수전 다 겪은 그들의 목소리는 달콤했다. “싸다” “쉽고 간단하다”며 어르고 달랬다. 그래도 우물쭈물 대면 강력한 한 방으로 휘어잡았다. “절대 들킬 리 없다.” “도망치면 아무도 모른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에서 무면허 미성년자에게 불법으로 렌터카를 대여하는 브로커를 찾는 건 너무나 쉬웠다. DM(다이렉트 메시지)을 보내자 답신도 재빨랐다. 곧장 전화를 걸어와 사탕발림을 날렸다. 차를 빌리려는 청소년이 아무리 어려도 개의치 않았다. 한 브로커는 “중2 학생도 이용하는 서비스”라 속삭였다.

그들의 상술은 약속이라도 한 듯 닮았다. 살짝 망설이는 기색이 있으면 채찍과 당근을 골고루 섞었다. “그냥 찔러만 보는 거면 거래 안 할 겁니다.” “기다리는 고객들이 많아요. 빨리 결정해 주셔야 해요.” “한번 믿어보세요. 다음에 빌릴 땐 더 잘해 드릴게요.” 누구도 빈말이라도 “교통신호 잘 지키라”거나 “과속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고 나도 된다”며 “버리고 튀라”고 했다.

‘별거 아닌’ 일은 다른 방향에서도 벌어졌다. 30대 남성 A 씨. 우연히 소셜미디어에서 ‘차량 공유 서비스에 명의를 빌려주면 돈을 드립니다’는 호객 글을 마주했다. 호기심 삼아 한번 명의를 제공했더니 통장에 3만 원이 꽂혔다. 그는 이후 4번 더 명의를 제공했다. A 씨가 제공한 명의로 불법 렌터카 브로커에게 차를 빌린 이들이 바로 1일 전남 화순에서 교통사고를 일으킨 10대들이다. 그렇게 그가 번 돈은 겨우 15만 원이었다.

무책임한 어른들의 안일함이 낳은 결과는 참혹했다. 그렇게 차를 빌린 10대들은 제한속도가 시속 30km인 도로에서 80km로 달리다 여대생을 치어 숨지게 했다. 이들은 브로커들이 조언한 대로 도망쳤다가 2시간 뒤쯤 마음을 바꿔 현장에 돌아왔다고 한다. 유족들은 5일 올린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마지막에 얼마나 아팠을지 생각하면 분노가 차오른다”며 고통스러워했다.

지난달 24일 개정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따르면 앞으로 대여사업용 차량을 임차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명의를 빌리거나 빌려주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처벌 수위가 해당 범죄의 해악을 가늠하는 중요 지표이긴 하지만, 법을 강화했다고 문제가 모두 해결되진 않는다. 불법 렌터카 대여는 이미 일상에 만연해 있다.

국토교통부와 경찰 등이 이 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브로커들은 공권력을 비웃으며 “절대 붙잡히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잘못된 일탈의 경계에 선 아이들도 마구잡이로 끌어들였다. 정부 당국이 그들에게 어떤 범죄도 절대 ‘별거 아닌 게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줄 차례다.

전채은 사회부 기자 chan2@donga.com
#청소년 불법 렌터카 대여#렌터카 대여 브로커#차량 공유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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