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
강 상·하류 국가 댐 건설 놓고 갈등
물·전기 확보에 필수 “양보 불가”
인구 증가·기후변화로 수자원 부족… “다음 전쟁은 물로 발발” 우려까지
8일 이집트 카이로 인근 기자 지역을 찾았다. 나일강변에 군데군데 자리한 초록색 옥수수밭이 눈에 띄었다. 빈민들이 소규모로 일군 불법 경작지였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은 “밭이 있던 자리는 원래 강이 흐르던 곳”이라며 “최근 몇 년간 나일강 범람이 거의 없어서 속속 밭이 들어서고 있다. 특히 올해는 단 한 차례도 침수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에티오피아가 댐에 몰래 물을 채우는 바람에 이집트의 물이 마르고 있다”며 날선 반응을 보였다.
2011년 에티오피아가 나일강 상류 청나일강에 초대형 수력발전댐 ‘그랜드 에티오피안 르네상스’ 건설을 시작한 후 두 나라는 거세게 대립하고 있다. 이집트와 에티오피아 모두 약 1억 명의 인구를 보유한 인구 대국인 데다 나일강이 자국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어 양측 모두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 이집트·에티오피아 모두 “생존 위협”
르네상스댐은 높이 155m, 길이 1.8km에 달하는 아프리카 최대이자 세계 7위 규모의 댐이다. 공사비 48억 달러(약 5조7600억 원)가 투입됐다. 현재 공정은 약 70%이며 에티오피아 정부는 이르면 내년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갈 뜻을 밝혔다. 연간 전력 생산량 목표치는 6000MW다.
양측 갈등은 올해 7월 아비 아머드 에티오피아 총리가 “올해부터 르네상스댐에 물을 채우겠다. 올해 저수 목표는 49억 t이며 공사가 완료되면 740억 t의 물을 담을 수 있을 것”이란 계획을 밝히면서 본격화했다. 에티오피아 최대 호수인 타나호의 저수 용량보다 3배 큰 규모다. 이로 인해 하류 수량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이집트는 격렬히 반발했다. 두 나라가 협상을 벌였지만 결렬됐고 아직까지 별다른 진전이 없다.
현재 에티오피아에서는 인구의 70%인 7000만 명이 전기를 마음껏 쓰지 못하고 있다. 르네상스댐 건설로 이 문제가 상당 부분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정부가 “댐이 없으면 국민 생존이 위협받는다. 댐 담수는 주권과 국가안보의 문제”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이집트 역시 “국민의 90%가 나일강 인근에서 거주한다. 수자원이 감소하면 더 큰 타격을 입는 나라는 하류에 위치한 이집트”라고 맞선다. 농경제 전문가인 나데르 누르 엘딘 무함마드 카이로대 교수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르네상스댐으로 인해 연간 100억 t의 수자원 손실이 예상된다”며 “토양 염분화가 심해져 농어업 종사자 500만 명이 일자리를 잃고 환경오염도 가속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나일강을 이용해 인류 문명의 발상지가 됐다는 자부심이 큰 이집트는 강의 통제권을 상실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상당하다. 그간 나일강 상류의 수단 에티오피아 케냐 등이 댐을 지으려는 시도를 할 때마다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인 이유다.
1978년 에티오피아가 처음 르네상스댐을 건설할 움직임을 보이자 안와르 사다트 당시 이집트 대통령은 “전쟁도 불사하겠다”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이후 에티오피아가 내전 및 에리트레아와의 전쟁에 돌입하면서 댐 건설이 미뤄지자 양측 갈등이 잠시 잦아들었지만 르네상스댐 완공 후 두 나라가 물리적으로 충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달 5일 에티오피아 정부 역시 “르네상스댐 주변의 드론 비행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드론 촬영을 통해 댐에 관한 각종 정보가 이집트로 유출될 것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 터키 패권주의 강화로 이라크·시리아도 몸살
수자원이 부족한 중동·북아프리카에는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처럼 강을 두고 대립하는 나라가 적지 않다. 터키 대(對) 시리아·이라크, 이스라엘 대 팔레스타인·시리아·요르단, 이란 대 이라크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을 둘러싼 상류의 터키, 하류의 이라크·시리아 간 대립은 각국의 국내 정치 문제까지 겹쳐 갈수록 꼬이는 모양새다. 중동 패권국을 꿈꾸는 터키는 1970년대부터 낙후된 남동부 지역을 개발하기 위해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에 22개의 댐과 19개의 수력발전소를 지었다. 수자원의 70%를 두 강에 의존하는 이라크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터키 남동부에는 해안가 대도시인 이스탄불, 이즈미르 등에 비해 이슬람 원리주의를 신봉하는 보수 성향 유권자가 많다. 이들은 2003년부터 집권 중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핵심 지지 기반으로 꼽힌다. 에르도안 정권이 남동부 개발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2011년부터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고 이슬람국가(IS)가 창궐하면서 시리아와 이라크 중앙정부 기능이 약화된 것도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에 대한 터키의 통제권을 강화했다.
22개 댐 중 가장 최근에 완공돼 올해 5월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간 일리수댐은 고대 수메르문명, 로마제국, 오스만튀르크제국 등의 문화유산이 풍부한 곳에 지어졌다. 2006년 에르도안 정권이 댐 건설 계획을 발표했을 때부터 문화재 파괴 우려가 높았지만 당시 에르도안 대통령은 착공식에서 “더 이상 남동부를 방치하지 않겠다. 이 댐이 지역 주민에게 큰 이익을 줄 것”이라며 댐 건설에 정치적 목적이 있음을 드러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는 올해 4월 보고서를 통해 “현재 이라크로 유입되는 유프라테스강의 수량이 1970년대보다 40% 감소했다”고 진단했다. 댐을 지어 물길을 틀어막은 터키 외에도 2014년 이라크 북부를 점령했던 IS는 일대의 주요 수자원 인프라를 파괴하고 강에 원유를 풀었다. IS가 난동을 부리는 동안 전력 인프라도 큰 타격을 입어 하수처리장 등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수자원 오염만 더 심해졌다.
이로 인해 중동에서는 드물게 물이 풍부해 한때 ‘중동의 베네치아’라고 불렸던 이라크 2대 도시 바스라가 큰 피해를 입었다. 2018년 수질 오염으로 바스라에서만 약 12만 명의 시민이 병원 치료를 받았다. 시리아 역시 내전 과정에서 정부군과 반군이 서로 급수시설을 공격하는 바람에 수자원 부족이 심해졌다.
○ 물 부족으로 예멘·시리아 내전 격화
수자원 부족이 기존 갈등을 증폭시키는 사례도 허다하다. 시리아에서는 내전 직전인 2006∼2011년 심각한 가뭄이 이어져 약 150만 명의 농민이 고향을 버리고 도시로 향했다. 갑작스러운 대규모 이동과 경제난으로 반정부 심리가 커진 상황에서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반대파를 잔혹하게 탄압하자 내전 발발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예멘도 비슷하다. 오랫동안 부족국가 체제로 지내온 예멘에서는 수 세기 동안 주요 부족이 물과 목초지를 차지하기 위해 혈투를 벌였다. 이 와중에 2015년부터 계속된 내전으로 아직도 인구 절반인 1300만 명이 심각한 수자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의 발발 원인으로도 수자원 분쟁이 꼽힌다. 당시 시리아가 요르단강 상류에 댐을 지으려 하자 안보 위협을 우려한 이스라엘이 맞서면서 전쟁으로 이어졌다. 이스라엘은 이 전쟁으로 점령한 골란고원을 아직까지 시리아에 반환하지 않고 있다. 골란고원이 요르단강 수자원을 통제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1960년대 이집트 역시 나일강에 아스완댐을 건설하면서 상류의 수단과 전쟁 직전까지 갔다.
범유럽 싱크탱크 유럽외교관계협회(ECFR)는 “최근 곳곳에서 인구 증가 및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수자원을 둘러싼 갈등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온난화로 인한 전 세계적 기후변화, 경제 개발에 따른 각국의 식수 산업용수 농업용수 수요 증가 등이 물 부족과 각종 분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집트 정치인 출신으로 아프리카 최초로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 고(故) 후세인 요르단 국왕 등 중동 각국 지도자는 오래전부터 “중동의 다음 전쟁이 물을 둘러싸고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역시 “다음 세기의 석유는 물”이라며 “21세기 인류가 식품 및 에너지 부족보다 물 부족으로 고통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 이어지면 중동·아프리카 지역에서 지금보다 더 격렬한 형태의 수자원 분쟁이 발발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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