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이 18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누가 백악관의 주인이 될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필자는 ‘누가 이길까’만큼이나 ‘큰 탈 없이 승자가 결정될까’도 궁금하다. 미국의 앞날에는 이번 대선의 ‘결과’ 못지않게 ‘과정’이 중요할 것이고, 이는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연방제 국가인 미국의 대선에서는 주별 투표 결과를 바탕으로 선거인단의 과반을 확보하는 후보가 승리한다. 독특하고 복잡한 선거제도를 갖고 있지만 대체로 승자가 결정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개표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대세가 기울면 패자가 ‘승복 선언’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돼 왔다.
하지만 올해는 이런 장면을 기대하기 어렵다. 먼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우편투표가 대폭 늘어났다. 최대 8000만 명이 우편투표를 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미국에서 이런 대규모 우편투표는 처음이다. 미국 언론들도 언제 개표가 완료될지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개표가 완료된 뒤에도 승자가 확정되지 않아 혼란이 이어지는 경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본인이 졌다는 개표 결과가 나오면 승복하지 않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우편투표는 사기”라고 거듭 주장하는 그가 우편투표를 문제 삼아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외신들은 ‘트럼프의 군대(Army for Trump)’라는 조직이 선봉대를 맡을 것으로 본다.
공화당은 사전투표, 우편투표를 감시하기 위해 이 조직을 통해 수천 명의 자원봉사자를 모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정 투표의 증거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 주 임무다. 이들은 회원 가입을 ‘입대’, 활동 분야를 ‘전선’이라고 표현하는 등 군대 이미지를 강조한다. 대통령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는 이 조직 트위터에 올린 동영상에서 “신체 건강한 남녀라면 ‘트럼프의 군대’의 투표 보안 작전에 참여하라”고 독려했다.
뉴욕대 로스쿨 ‘정의를 위한 브레넌센터’ 분석에 따르면 우편투표에서 오류가 발생할 확률은 0.0003∼0.0025%에 불과하다. 이를 적용하면 8000만 명이 우편투표를 해도 최대 2000표 정도의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극히 낮다. 그럼에도 모니터링을 명목으로 인력을 대규모 동원하는 진짜 목적은 투표의 신뢰성에 흠집을 내고 불안감을 조장하는 것이라고 민주당 측은 주장한다. 포브스는 “트위터에 #ArmyForTrump를 검색하면 트럼프 반대자에 대한 폭력을 부추기는 내용이 많다. 일부 글에선 민주당 인사들을 ‘적’으로 규정한다”고 전했다. 최근 부쩍 부각되고 있는 미국 내 극우 무장세력의 움직임과 이미지가 오버랩된다.
민주주의라는 체제의 핵심은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다. 물론 투·개표에 문제가 있다면 바로잡아야겠지만 대통령을 옹호하는 조직적 세력이 만들어낸 소송을 통해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구성된 대법원에서 결과가 뒤집힌다면 수긍하지 못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미국 사회에 극심한 갈등을 불러올 수 있다.
2000년 대선에서 민주당 앨 고어 후보는 플로리다주 투표용지의 문제로 ‘이기고도 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대법원이 재검표를 불허하자 “정당보다 국가가 우선”이라며 깨끗이 승복했다. 1960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 후보는 0.2%로 패배한 일리노이주에서 재검표를 요구하자는 측근들에게 “그러면 나라가 분열될 것”이라며 거부했다고 한다. 이런 전통이 미국의 선거제도와 민주주의를 지켜온 근간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