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열병식의 화평, 대결 메시지 계기로
대북 관여파-봉쇄파 정책 대치 재연
중도층 환멸에 대북정책 만족도 급락
文정부, 평양 냉철하게 바라봐야 한다
북한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맞은 평양의 자정은 숙숙(肅肅)하면서도 맹렬했다. 김일성광장에서 펼쳐진 열병식 단상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잠시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떨궜지만 이내 웃음을 띠고 군기병(軍旗兵)을 격려했다. 북녘의 인민들에게 사의를 표했고 남녘의 동포들에게 위로를 전했다. 혁명군대의 현대적 발전을 칭송하고 전략무력의 전쟁억제력을 과시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공화국 무력 최고사령관의 낙루(落淚)와 파안(破顔) 사이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가로지르는 동안 서울을 향한 평양의 마무(摩撫)는 허허(虛虛)해 보였다.
눈물 속 화평의 손짓과 웃음 속 대결의 몸짓 가운데 어느 쪽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지를 둘러싸고 낯익은 한국 사회의 쟁투가 다시 점화했다. 남녘 동포 위문을 강조하는 쪽에서는 김 위원장의 연설을 코로나19 방역 관련 남북협력의 계기로 이해했고 신형 ICBM 공개를 남북 및 북-미 대화가 필요한 이유라고 설파했다. 신형 ICBM 전시를 부각하는 쪽에서는 새로운 전략무기의 등장을 향후 남북 및 북-미 협상에서 활용할 강압 지렛대로 포착했고 남녘 동포 위문을 공무원 피격 사건을 무마하려는 목적이라고 파악했다. 전자가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 추진을 적극 환영하면서 김 위원장의 남녘 동포 위문 연설과 연결시켜 남북대화의 불씨를 지피려 한다면, 후자는 신형 ICBM의 증대한 위협을 적확하게 평가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종전선언을 추진할 경우 남북관계는 물론 한미동맹 또한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 사회가 경험한 대북 관여파와 대북 봉쇄파 사이의 정책 대치가 김일성광장의 열병식을 계기로 재연된 모양새다. 열병식 직후의 알앤써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 위원장의 남녘 동포라는 유화적 언급에 진정성이 있는지를 물었을 때 유권자의 59%가 진정성이 없다고, 31%가 진정성이 있다고 각각 대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선언으로서 종전선언이 필요한지를 물었을 때 유권자의 48%가 찬성하는 입장을, 40%가 반대하는 입장을 각각 표명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권자들은 김 위원장의 연설에 대한 평가에서는 매우 단호하게 대북 봉쇄파의 손을 들어준 반면에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추진에 대한 평가에서는 확고하게 대북 관여파의 편을 들어주기에는 조심스러웠던 셈이다. 대북 인식과 관련하여 유권자들이 문재인 정부에 보다 냉철한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분명한 반면에 대북 정책과 관련하여 유권자들이 문재인 정부에게 보내는 지지는 그다지 탄탄하지 못하다는 진단이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연례 여론조사 결과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이 왜 유권자의 민심 속에 표류하고 있는지 이해할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2020년 대북 정책의 만족도를 묻는 질문에 유권자의 38%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 수치는 2017년 59%, 2018년 66%, 2019년 56%를 기록한 문재인 정부의 최솟값에 해당하는 한편 2007년 동일 항목 조사 이래 가장 많이 하락했다. 박근혜 정부의 최저치(2016년 45%)보다 낮은 것은 물론이고 이명박 정부의 최저치(2009년 32%)에 근접하는 수치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만족도 폭락으로부터 지난 4년 동안 유권자들이 경험한 기대와 실망의 거대한 주기를 읽어내는 일은 어렵지 않다. 정책 기대의 규모가 클수록 그것을 충족하는 정책 결과의 한계효용에는 체감법칙이 작동하기 마련이고, 그것을 충족하지 못하는 정책 결과의 한계효용에는 체증법칙이 작동하기 때문에 결국 정책 실망의 규모가 커졌다는 말이다.
2018년과 2020년 사이 문재인 정부 대북 정책에 대한 만족도 변화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진보 유권자가 75%에서 60%로 15%포인트, 보수 유권자가 47%에서 18%로 29%포인트, 중도 유권자가 66%에서 32%로 34%포인트 하락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중도 유권자의 민심 속에서 문재인 정부 대북 정책에 대한 실망의 정도는 진보 유권자 실망의 정도보다 2배 가까이 크다. 문재인 정부 대북 정책이 표류하는 연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중도 유권자의 정책 환멸과 맞닥뜨린다. 김 위원장의 낙루와 파안 사이를 가로질러 문재인 정부가 평양을 보다 냉철하게 바라보아야 할 하나의 중요한 연유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