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의 건축가’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다. 건축가가 인정하는 건축가라는 말이다. 다니구치 요시오가 그런 건축가다.
일본 도쿄 우에노 공원에 가면 그의 걸작이 있다. 국립 도쿄 호류지 보물 박물관(The Gallery of Horyuji Treasures, Tokyo National Museum)이다. 이 박물관을 직접 보고서 미국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모마)은 새로운 모마 박물관을 증축할 건축가로 쟁쟁한 글로벌 스타 아키텍트들을 뒤로하고 그때까지 무명이었던 다니구치를 선택했다.
도쿄 사람들에게 우에노 공원은 뉴욕의 센트럴파크 같은 곳이다. 근대 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의 유일한 일본 작품도 이 공원에 있다. 호류지 박물관도 이곳에 있다.
호류지 박물관 앞에는 큰 인피니티 풀이 있다. 수면 위로 사뿐히 가로지르는 다리가 있고, 다리 끝에는 박물관의 넓고 깊고 얇은 지붕이 맞이한다. 처마 아래에 유리 박스가 있고, 그 뒤로 돌 박스가 처마 위로 솟아 있다. 지붕 처마는 얇고 긴 4개의 기둥이 지지한다.
처마 아래는 처마의 깊이가 깊어서 한낮에도 그림자가 드리운다. 그 덕에 유리 박스 표면은 어두워져 거울처럼 주변의 숲과 구름과 하늘을 반사한다. 또 그 반사상은 인피니티 풀 위에서 다시 반사하며 일렁인다.
자세히 보면 처마와 돌 박스 경계에는 틈을 주어 천창(지붕에 설치한 창)을 달았다. 쨍쨍한 날 오후에는 자연광이 천창을 통과하여 돌 표면을 쓸어내린다. 유리 표면이 하늘하늘 가벼워 보이는 데는 얇아질 대로 얇아진 기둥과 처마도 한몫한다. 원기둥의 직경 대비 높이를 한없이 키워 기둥은 마치 이쑤시개처럼 얇아 보인다. 그래서 과연 이런 기둥이 저런 큰 지붕을 지지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처마도 기둥 못지않다. 처마를 넓고 깊게 뽑기 위해서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처마 껍데기 안의 뼈대가 두꺼워져야 하는데, 이곳의 수치는 한 뼘을 조금 넘는다. 이 한 뼘은 웬만한 선진국 건축기술로도 ‘넘사벽’이다. 일본 건축이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자주 석권하는 비밀이 그 얇은 수치에 숨어 있다.
호류지 박물관의 구조적 경이는 기둥과 처마에서 끝나지 않고 유리 박스로 이어진다. 보통 유리벽을 이 정도 높이로 올리면, 바람과 같은 수평 하중이 수직 하중보다 더 문제다. 이를 알았던 다니구치는 유리를 붙잡는 틀로 알루미늄 대신 철을 썼다.
철은 알루미늄보다 강도가 높아 더 얇게 쓸 수 있고, 장식재가 아닌 구조재로 사용할 수 있다. 건축가는 철을 루버처럼 수직적으로 잘게 썰어 유리도 붙잡고, 바람에도 대항하는 버팀대로 사용했다. 또한 자신의 신출귀몰한 철 놀림 실력을 과시라도 하듯, 1층에서는 철 틀 면적의 4분의 3을 지웠다. 그리하여 허공에 뜬 철 틀처럼 보여 얇은 기둥과 처마와 연합하여 건물의 가벼움을 가속화한다.
다니구치는 젊어서 히로시마에 있는 이쓰쿠시마 신사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밀물 시간이 되자 물이 밀려와 건물 기초를 잠수시켰다. 일몰의 빛이 수면을 따라 들어와 신사의 처마 밑면을 일렁이며 밝혔다. 이후 그는 평생 여러 작품에서 이를 재현하려 했고, 호류지 박물관에서 그 꿈을 이뤘다.
저녁이 되면 인공조명이 곳곳에서 켜진다. 천창에 심은 조명은 돌 면을 위에서 아래로 쓸어내리고, 유리 철틀에 심은 조명은 유리면을 아래에서 위로 쓸어내린다. 건축가가 가장 신경 쓴 조명은 수면 아래 조명이다. 이 조명은 처마 밑면을 향하는데, 조명이 물 아래에 있어 처마 밑면이 일렁인다.
모마의 박물관장 글렌 라우리와 건축부장 테런스 라일리는 바로 이 점에 매료되어 다니구치를 21세기 모마 건축가로 택했다. 올해로 다니구치는 82세다. 더 늦기 전에 그의 작품이 한국에 하나 건립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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