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온라인에서는 퇴사나 폐업당한 사연을 영상으로 담아내는 일명 ‘브이로그(비디오+블로그)’가 인기다. 해고통지서를 받은 직장인들은 10분 남짓한 영상에서 사표 내기, 짐 싸기, 인사하기, 실업수당 신청하기 등의 과정을 하나씩 보여준다. 폐업한 카페 사장님 영상을 보면 마지막 커피 내리기부터 집기 처리, 폐업신고 등 모든 과정을 볼 수 있다. 화려한 편집에 내레이션까지 넣어 한 편의 드라마처럼 만든 영상부터 갑자기 다니던 회사가 사라져 격정을 토해내는 영상까지 ‘장르’도 다양하다. 직장인끼리 모여 해고 통보받던 그날의 심정을 털어놓는 집단 인터뷰 영상도 있다.
놀라운 것은 퇴사, 해고, 폐업을 얘기하는 이들 대부분이 30, 40대 젊은 직장인, 자영업자라는 점이다. 영상에 익숙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는 이제 퇴사와 폐업이라는 소재를 이런 식의 동영상 콘텐츠로 만들고 있다. 외환위기 때만 해도 구조조정, 정리해고의 대상은 50대 중년들이 많았다. 퇴직 후 준비 없이 치킨집, 호프집 창업에 나섰다가 폐업을 하는 사람들도 주로 아버지 세대였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우리 삶을 한 치 앞도 모르게 만들었다. 아버지 세대가 겪을 줄 알았던 일을 30대 초반의 내가, 3년 차 직장인 친구가, 이제 막 창업한 내 동생이 겪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실패를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얘기하는 것에는 여전히 낯선 반응이 많다. 폐업이나 해고 등 자극적인 소재로 돈을 벌기 위해 영상을 만든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본 적 없는 사람의 퇴사 및 폐업 영상에는 수많은 공감과 위로의 댓글이 달리고 있다.
MZ세대를 연구한 ‘요즘 것들’의 저자 허두영 씨는 이를 Z세대의 출생률로 해석했다. 그에 따르면 Z세대의 평균 출생률은 1명 초반이다. 온라인 세상에 익숙한 이들은 형제자매나 친구의 역할을 가상의 공간에서 찾고 있다. 여행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영상으로 찍어 올리는 30대 초반 직장인 A 씨도 자신의 영상 제작 목적을 위로와 소통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행을 못 가는 아기 엄마, 수험생, 취업준비생들이 나의 영상을 보며 위로받고 대리만족을 얻는다”며 “남들이 보면 별것 아닌 영상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생각에 영상을 계속 찍고 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채널A가 28일부터 온라인에서 진행하는 ‘2020 리스타트 잡페어’에는 요즘 소통 전문가로 인기를 얻고 있는 김창옥 씨가 강연 연사로 나선다. 그는 ‘고생 끝에 일자리 온다’는 주제의 강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은 힘들어서 망하지 않는다. 위로받지 못할 때 망한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 ‘힘들었지’ ‘괜찮아’ ‘잘할 수 있어’라는 공감과 위로의 말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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