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2005년 영화 ‘아무도 모른다’는 1988년 일본 사회에 충격을 던진 스가모 아동 방치 사건을 소재로 했다. 도쿄 도심, 부모가 모두 가출한 뒤 세상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었던 어린 4남매의 이야기다. 영화에서는 12세 장남이 가출한 엄마를 기다리며 가족을 꾸리는 과정의 막막함이 그려져 있다. 실화에서는 이웃의 신고로 경찰이 들이닥쳐 아이들은 복지시설로 보내졌고 엄마는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엄마(30)가 외출한 집에서 배가 고파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 화재로 중상을 입은 인천의 ‘라면 형제’ 중 여덟 살 동생이 그제 하늘로 떠났다. 지난달 14일 화재가 난 뒤 37일간이나 병마와 싸웠고 한때 의식을 찾는 등 상태가 호전되기도 했다는데,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열 살과 여덟 살. 불이 나자 아이들은 다급하게 119를 눌렀지만 “살려주세요”만 외친 채 전화를 끊었다. 2분 뒤 이웃이 신고해 화재 위치 등을 알렸다고 한다.
▷형제는 오랫동안 돌봄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었던 듯하다. 다만 어른들이 부실하면 아이들은 일찍 철이 든다. 형제는 늘 함께 다니며 서로를 챙겼다. 야심한 시각에 편의점에서 먹을거리를 고르는 폐쇄회로(CC)TV 영상에서 아이들의 힘든 생활을 눈치챌 수 있다. 한창 개구쟁이 노릇을 할 아이들이 비쩍 마른 몸으로 컵라면이니 도시락을 챙기곤 했다. 서로가 유일한 친구였다는데, 이제 형 혼자 남겨졌다. 어른들이 너무 많은 빚을 졌다.
▷코로나19는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감염된다는 점에서 공평하지만 돌봄 사각지대의 사람들에게 유난히 가혹하다. 형제도 학교가 비대면 수업을 시행하면서 급식 대신 직접 끼니를 해결해야 했다. 엄마는 수년 전부터 형제를 학대·방임한 혐의로 8월 검찰에 송치됐고 가정법원은 이 가족에게 상담을 받으라는 보호처분을 내렸지만 이 또한 코로나 사태로 방치돼 버렸다.
▷아이들에게 부모 혹은 가족은 자신에게 주어진 전 세계와 같다. 그곳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아는 아이들이 ‘내게도 돌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이웃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이유다. 형제가 끔찍한 화상을 입고 병원에 누워 있는 사이, 쾌유를 비는 성금이 2억 원가량 모였다. 아이들로선 그저 ‘천문학적 숫자’일 뿐인 2억 원보다 당장 편의점에서 쓸 수 있는 2만 원이 좋았을 것이고, 2만 원보다는 따뜻한 어른의 보살핌이 자연스러웠을 터다. 이번 동생의 사망 소식에 맘카페 엄마들 사이에서 “가슴 아프다” “안타깝다”만큼이나 “미안하다”는 댓글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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