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한 통, 소주 두 병, 맥주 두 캔, 물 두 병, 우유 한 통, 담배 한 갑, 마스크 다섯 장 그리고 숙취 해소 음료 한 병.
이 물건들이 대체 뭘까? 혼자 사는 내가 시청 사무실에서 지친 하루를 보낸 어느 날 퇴근길에 편의점에 들러 산 ‘혼술’ 준비물? 아니다. 자전거 100여 m를 타다 곳곳에서 발견한 불법 투기된 쓰레기들이다. 참 보기 싫고 안타까운 현실이다.
지난주 휴가를 내고 혼자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전남 광양시에서 출발해 해안도로를 따라 강원 고성군에 있는 통일전망대를 거쳐 강원 인제군 미시령까지 찍었다. 8일 만에 1100km를 타고 다시 상경했다. 강한 맞바람을 제외하고는 정말 좋은 여행이었고 힐링이 많이 됐다. 자전거를 타면서 주마등처럼 바뀌는 풍경을 즐겼고 작은 시골 동네부터 조금 더 큰 면, 읍을 포함해 대도시까지 거치면서 한국의 다양한 모습을 발견했다. 각 지역의 특산물을 먹어보면서 한국 요리의 다양성도 알게 되었다.
벼를 수확하는 농민, 코스모스 꽃으로 온통 뒤덮인 길가, 마치 빨랫줄에 널린 빨래처럼 마르고 있는 오징어, 거센 가을바람에 바다에서 미어캣처럼 몸통이 튀어 오르는 파도, 신나게 탈 수 있는 그 큰 파도가 언제 올지 지켜보고 있었던 서퍼들, 무엇보다 휴식 시간에 다른 라이더들과 간식을 나눠 먹고 라이딩으로 아픈 엉덩이와 허벅지 고통을 하소연하며 공감대를 쌓은 것은 좋은 추억으로 남은 것 같다.
그런 가운데 시골이든, 도시든, 논밭이든, 해변이든, 어디든 불법 투기된 쓰레기가 많이 보인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앞서 언급한 음식물 포장재뿐만 아니라 생활폐기물과 버려진 가전제품도 자주 보였다. 그런 쓰레기들이 예쁜 한국 풍경을 흉하게 만들고 있었다.
달리는 차에서 쓰레기를 일부러 막 던져 버리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갖고 있을지 궁금하다. 물론 쓰레기통을 찾기가 어려울 때도 있다. 하루 종일 쓰레기를 들고 다니는 것은 누구나 다 귀찮다. 그렇다고 함부로 길가에 버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도 숨어 있는 영웅들 덕분에 생각만큼 심하지는 않았다. 그 숨어 있는 영웅들은 바로 각 동네의 어르신들이다. 큰 도시든 작은 마을이든 상관없이 나는 매일 아침 준비 운동을 하듯 느린 속도로 출발했다. 그럴 때마다 네온 색깔의 안전 조끼를 입으신 어르신들이 쓰레기를 줍는 모습을 언제나 발견할 수 있었다. 그분들은 즐거운 얼굴로 쓰레기를 치우셨지만 오랜 기간 일하고 이제 쉬어야 할 연세에 남의 경솔한 행동으로 버린 쓰레기를 줍고 계시는 모습을 보니 참 안타까웠다. 등이 구부정한 할머니가 쓰레기로 가득 찬 큰 마대 자루를 들고 계신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를 타면 생각할 시간이 많이 생긴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한국사회에서는 효도라는 개념이 무척 중요하다. 어르신들을 위할 줄 알아야 하고 공경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쓰레기를 마구 버려 대서 오염된 환경을 어르신들이 치우고 계시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었다. 남의 몰지각한 행동 때문에 우리 할머니가 쓰레기를 주우러 다니셔야 한다면 화가 날 것 같았다.
미시령을 건너오고 설악산국립공원을 횡단하면서 곳곳마다 나뭇잎 색이 변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니 걱정이 되었다. 단풍을 구경하기 위해 분명 많은 사람이 차를 타고 산행에 나설 것이다. 길에서 ‘쓰레기의 해일’이 일지 않을까 걱정이다.
나들이를 나설 분들에게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다. 북미 원주민인 시애틀 추장이 했던 말처럼 ‘갖고 올 것은 추억일 뿐, 남길 흔적은 발자국일 뿐’이라고 나도 권하고 싶다. 오염된 환경에서 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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