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4대 그룹 총수가 서울시내 모처에서 모임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주목을 받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 대표가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재계 3·4세인 이들 4대 그룹 총수는 종종 친목을 겸한 모임을 가져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날은 각종 경제 현안에 대한 재계의 목소리를 어떤 경로를 통해 외부에 전달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은 것으로 전해져 주목을 받았다.
그간 4대 그룹은 전국경제인연합회를 통해 목소리를 내왔지만 2016년 국정농단 사태 이후 전경련을 탈퇴했다. 대한상공회의소나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재계를 대변하고 있지만 전경련 시절처럼 10대 그룹 중심의 공동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대한상의는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다양한 회원사들의 의견을 조율해야 하는 단체이고, 경총은 노사관계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경총도 2018년 손경식 회장 취임 이래 종합 경제단체를 표방하고 있지만 전경련에 비해 예산이나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전경련을 혁신하거나 기존 단체 강화, 혹은 새로운 단체 설립 등 다양한 방안이 주요 그룹을 중심으로 논의되기도 했지만 뾰족한 답은 내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일본 수출 규제, ‘경제 3법(상법, 공정거래법, 금융그룹감독법)’ 제·개정 등 굵직한 현안이 터질 때마다 ‘재계가 공동 대응해야 한다’는 화두는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각종 논란 속에서도 왜 재계는 공동 목소리를 낼 통로가 필요한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한국 경제사에서 경제단체가 차지했던 역할부터 살펴봐야 한다.
○ 경제개발의 파트너 vs 정경유착의 뿌리
“나는 오늘까지 생애에서 단 한 번의 공직을 맡은 일이 있다. 전경련의 전신인 한국경제인협회의 초대회장이 그것이다.”
삼성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이 1986년 펴낸 ‘호암자전’에는 1961년 한경협 초대회장을 맡게 된 일화가 자세히 나온다. 5·16 군사정변을 일으킨 군사정부는 당시 11대 기업 경영자들을 부정축재자로 지목해 구속했다.
부정축재자 1호로 꼽힌 이 회장은 도쿄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고민 끝에 군사정부에 서한을 보내고 귀국했다. ‘전 재산을 헌납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이 국민의 빈곤을 해결하는 방법이 된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경제활동의 위축이 빈곤의 해결이 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귀국 후 이 회장은 박정희 국가재건 최고회의 부의장을 만나 재차 뜻을 밝히며 담판을 지었다. 결국 군사정부는 경제인을 처벌하지 않는 대신 당국의 지시대로 각각 공장을 짓도록 했다.
정부의 경제개발계획을 실행할 기구가 바로 전경련의 전신인 한경협이었다. 일본 경제인단체연합회를 모델로 정권-재계의 협업이 시작된 셈이다.
한경협은 정부의 지시를 무조건 따르는 단체가 아니라 경제개발에 필요한 정책을 제안하기도 했다. 외자도입을 통해 울산공업단지를 건설하는 등 정유 제철 시멘트 같은 기간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고, 정부도 이를 받아들였다. 실제로 1960년대 후반 일어난 석유화학, 전자, 제철, 자동차 산업은 지금껏 한국경제의 근간이 됐다. 1968년 전경련으로 이름을 바꾼 이후에도 서울 올림픽 유치, 산업 구조조정 등에 주요 역할을 해왔다.
특히 4대 그룹인 삼성, 현대, SK, LG가 급성장하면서 전경련의 핵심 의사결정을 주도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전경련 회비 수입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4대그룹=전경련이었다”고 말했다.
때로는 정권에 ‘돌직구’를 날리기도 했다. 1995년 전경련 회장이던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은 김영삼 정부의 30대 그룹 규제 정책에 대해 “에디슨이 전구 만들 때나 하는 얘기”라고 정면 비판했다. SK는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받았고 재계에선 ‘괘씸죄’에 걸렸다는 말이 돌았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전경련 회장을 맡고 있던 고 김우중 회장도 청와대와 갈등설이 돌았다. 당시 대우그룹의 해체는 부실 경영 탓이 크지만 재계에선 “전경련이 전면에 나서봤자 손해”라는 인식이 퍼졌다.
여론도 좋지 않았다. 외환위기 이후 재벌 책임론이 커지면서 ‘재벌 개혁’은 20여 년 이상 화두가 됐다. 여론 악화의 정점을 찍은 사건은 2016년 국정농단 사태다. 전경련이 미르·K스포츠재단 후원 모금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 사태 이후 4대 그룹은 전경련을 탈퇴했다.
○ ‘재계 공동 대응’ 필요성 대두 왜?
4대 그룹의 전경련 탈퇴는 2017년 문재인 정부의 등장과 더불어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삼성은 공식적으로 미래전략실 해체와 함께 “삼성에 그룹은 없다”며 계열사 중심 경영을 선언했다. 한 재계 고위 관계자는 “내부에선 정권의 간섭을 받고, 돈을 내야 하는 창구가 없어지는 게 나은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이후에도 정부와 4, 5대 그룹의 비공식 회동은 이어져왔다. 주요 정책에 대해 기업과 소통할 창구는 상시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작은 2017년 6월 김상조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이 4대 그룹 전문경영인 회동을 가진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가치인 공정경제와 관련된 의견을 청취하고자 마련된 자리였다. 이후 평양 남북 정상회담, 일본 수출 규제 등 굵직한 사안이 터질 때마다 정부와 재계 간 회동이 이어졌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 여당도 일자리 및 투자 대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재계와 소통할 필요성이 생겼다. 대한상의 등을 통해 회동을 주선하다 아예 4대 그룹 중심의 경제단체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말이 돈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앞에선 때리지만 뒤에선 필요한 존재라는 게 현재 재계에 대한 정부의 속내라는 해석도 나온다.
재계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창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과거엔 고 이병철, 정주영, 최종현 회장 등 재계 수장들이 정부의 잘못된 정책엔 돌직구를 날리며 제동을 걸었다. 최근엔 이런 쓴소리를 할 재계 수장도, 단체도 보이질 않는다는 게 중론이다.
정부 정책을 견제할 구심점이 없다는 것은 경제 3법 대응에서 두드러졌다. 주요 재계 단체들이 각자 대응에 나섰기 때문이다. 대한상의는 상의대로 보완책을 내놨고, 경총과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산업연합포럼, 한국상장사협의회, 한국코스닥협회 등 경제 6단체는 ‘규제 3법 전면 반대’로 정치권에 한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전경련은 따로 반대 의견을 내고 있다.
○ ‘한국형 헤리티지’ 주목
이달 초 열린 경총 하반기(7∼12월) 회장단 회의에서 “규제 3법이 나온 배경은 결국 반기업 정서 때문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지지를 받았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대안으로 주목받는 것이 ‘싱크탱크’ 중심의 정책기구다. 한때 삼성경제연구소, LG경제연구원 등 기업연구소들이 경제 분석, 정책 연구 기능을 맡았지만 최근엔 기업 내부 활동에 전념하며 대외 기능이 대폭 축소된 상태다.
벤치마크 대상으로는 미국 헤리티지재단이 꼽힌다. 2016년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고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전경련은 헤리티지재단처럼 재단으로 운영하면서 각 기업 간 친목 단체로 남아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전경련도 헤리티지 모델을 주창해 왔다.
1973년 출범한 헤리티지재단은 미국 보수성향의 대표적인 정책연구기관이다. 이들은 자유로운 기업 활동, 자유시장 경제, 작은 정부, 강력한 국방, 개인의 자유 등에 원칙적 목표를 두고 공공정책을 제안한다. 정파적인 특성은 보수당인 공화당에 가깝지만 특정 당파에 속하지 않고 자유롭고 광범위한 정책연구를 수행한다.
헤리티지재단이 미국 사회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80년 레이건 대통령이 당선된 후다. 이들은 대선 직후 ‘리더십 지침(Mandate for Leadership)’이란 제목의 1000여 쪽에 달하는 정책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 안에는 경제, 교육, 정부개혁, 의료 등 주요 부문 정부 정책에 대한 다양한 대안이 담겼는데 레이건 대통령 행정부는 임기 중 이 보고서 제안의 60% 이상을 정책으로 채택하며 헤리티지재단의 견해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였다. 헤리티지재단은 정책 연구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몇 가지 원칙을 갖고 있다. 정부 기관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지 않고, 특정 기업의 후원도 전체의 5%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싱크탱크의 역할은 새롭게 등장하는 정책이나 의제를 구체화하거나 평가하고, 반대로 시민사회에서 나온 각종 아이디어나 사회적 문제를 쟁점화하는 데 있다”라며 “헤리티지재단은 단순히 정책보고서를 발간하는데 그치지 않고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활발한 대외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강화하며 경쟁력을 쌓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형 헤리티지재단 도입에 있어 문제는 재원이다. 미국에 비해 개인 기부자가 적은 한국에서 양질의 박사급 인재 확보 등을 위해선 결국 4대 그룹이 개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기업 관계자는 “어떤 형태가 됐든, 한국 경제발전이란 목표 아래 부담 없이 정책을 제안하고, 정부 정책을 견제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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