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는 심리적 충격을 받고 경찰에 신고했는데도 형사 사법절차를 통해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다. 사설 경호원을 고용할 정도로 정신적 충격이 심해 보인다.”
23일 서울북부지법 형사합의13부(부장판사 허경호)는 프로 9단 바둑기사 조혜연 씨(35)를 1년 넘게 스토킹한 혐의로 기소된 정모 씨(47)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이때 밝힌 양형 이유엔 ‘사설경호업체’가 등장한다.
조 씨가 유명인사라 경호원을 둔 거라 짐작할 수도 있다. 전혀 그렇지 않다. 경호 전문 법인 ‘이지스시큐리티’는 “스토킹으로 경호를 의뢰하는 건수가 많을 땐 전체의 30%가량 차지할 정도”라고 밝혔다. 그만큼 일반인 피해자들도 사설 경호를 많이 찾는다.
스토킹은 엄연한 범죄인데 피해자들이 공권력에 기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찰 관계자는 “현행법상 스토킹은 경범죄처벌법의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분류된다. 최대 처벌 수위가 벌금 10만 원이고, 대부분 상대방에게 구두 경고 정도로 그친다”고 했다. 당연히 이런 조치는 별다른 효력이 없다. 오히려 더 끔찍한 스토킹을 부채질하기도 한다.
서울에 사는 여성 김모 씨(24)가 그랬다. 한때 사귀던 남성이 이별 뒤에도 끈질기게 괴롭혔다. ‘다른 남자를 만나면 너와 가족을 해코지하겠다’는 문자가 수십 통씩 쏟아졌다. 대뜸 찾아와 대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결국 김 씨는 지난해 8∼10월 4번이나 경찰에 신고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첫 신고는 훈방. 2, 3번째는 벌금 10만 원씩. 마지막엔 구두 경고. 그러자 그는 더욱 대담해졌다. 김 씨가 없을 때 열쇠수리공을 불러 문을 따고 집에 들어오기도 했단다. 모텔을 전전하고 몰래 이사를 반복하다가 결국 한 업체에 24시간 경호를 의뢰했다. 김 씨는 “경찰도 누구도 내 편에서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게 너무 서러웠다”고 했다.
스토킹은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는 몇 년씩 이어지기도 한다. 김 씨 역시 1년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도 외출 전후 꼭 집 안 곳곳의 사진을 찍는다. 혹 누군가 다녀갔을까 확인하는 것이다. 올 8월 경호 전문 법인을 찾은 20대 A 씨도 마찬가지였다. 몇 년 전 범죄는 마무리됐지만, 집 밖에 쓰레기 버리러 갈 때조차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고 했다. 방범창과 적외선 센서도 위안이 안 돼 결국 경호를 신청했다.
물론 스토킹을 엄벌에 처하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자칫 과도한 법 적용은 또 다른 피해자를 낳을 수도 있다. 하지만 범죄 예방도 중요한 공권력의 책무임을 감안하면 현 대처 수준은 아쉽기 짝이 없다. 인터뷰로 신분이 드러날까 겁나하던 또 다른 여성 피해자는 “살고 싶다”는 표현까지 썼다.
“우리나라는 누가 희생돼 이슈가 돼야 관련법이 마련되잖아요. 제 이름이 걸린 ‘×××법’이 마련돼야 스토킹이 해결될까요? 제발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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