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그 식당은 끝내 문을 닫았다. 십수 년 동안 보수 한 번 하지 않은 낡은 간판에 불이 꺼진 지 두어 달 만의 일이었다. 갑갑할 때면 즐겨 찾던 동네 노래방도 점포를 내놓았다. 거리 두기 1단계 조정을 맞아 반가운 마음으로 찾았다가 ‘임대문의’가 나붙은 문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공연계 종사자 친구 A는 몇 달간 희망고문에 시달렸다. 이번엔 할 수 있을 것 같던 공연들이 매번 목전에서 취소됐다. 일정 공지만큼의 취소 사과가 잇따랐고, 그때마다 A는 극심한 상실감을 느꼈다. 생활고는 덤이었다. 사업을 하는 B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보조금은 임시방편이었고 ‘착한 임대인’들보다는 ‘우리도 힘든 임대인’들이 절대 다수인 것이 현실이었다. 눈물을 머금고 직원들을 내보낸 B는 대출에 의지해 임차료를 감당하고 있다. 이 밖에도 여행광인 C는 옛 사진들을 들춰보며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고, 연이은 결혼 연기에 지친 D는 잦아진 다툼으로 파혼을 고민하고 있다. 코로나19가 할퀴고 간 우리의 일상이다.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내게도 타격은 있다. 일단 대학원 수업이 전면 비대면화되었다. 여전한 등록금 대비 수업의 질과 같은 이슈는 논외로 치더라도 학교라는 공간과 사제 간, 원우 간의 교류가 주는 에너지를 더 이상 느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손실이었다. 근 1년을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하다 보니 즐겁기만 했던 공부는 점차 따분해졌고, (핑계이겠지만) 올해로 예정돼 있던 졸업 논문은 끝이 요원해졌다.
그뿐인가. 코로나 시대의 이직이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가뜩이나 낯선 환경인데, 마스크로 표정을 지운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말을 걸고 얼굴, 아니 눈매를 익히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쩌다 마스크라도 벗고 있으면 같은 팀인지도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였다. 거기다 (마찬가지로 핑계이겠지만) 헬스장마저 이용할 수 없게 되면서 ‘확찐자’의 반열에 합류하기에 이르렀다.
코로나에, 장마에, 마스크 쓰고 우산 들고 다녔더니 한 해가 다 갔다. 올해는 유난히 도둑맞은 느낌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 박혀 보내며 학업도, 경력도, 운동도, 여행도, 모임도, 생각보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무력감을 절절히 느꼈다. 그 결과, 살은 얻고 의욕은 잃었다.
그야말로 계획했던 삶이 일제히 틀어진 한 해였다. 그다지 멋진 사고방식은 아니지만 자위와 위로를 겸하자면 모두가 한 걸음씩 퇴보한 해가 아닐까 한다. 원통하고 슬프지만 겸손과 일상의 귀함을 깨닫는 시간이었으리라. ‘뉴노멀(New Normal)’이라 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무너진 마음에도 뉴노멀이 필요하다. 한 걸음 물러선 지금 이 자리에서의 모습을 애석해하는 대신 받아들이는 것이다, 새로운 기준, 새로운 시작점으로. 다만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있다. 누군가의 걸음은 그 보폭과 무게가 더 크고 무거울 수 있다.
여전히 아득하지만, 폐허가 된 공간과 마음들을 다시 조금씩 쓸고 보듬어 다음 걸음을 내디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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