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빈곤 0명’에 집착하는 中… 내수경제 기반 마련 안간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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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현장을 가다]
“美 능가하려면 남루한 현실 없애야”
코로나19 여파 빈곤 감소에 어려움… OECD 기준 빈곤층 최대 5억 명 추산
빈곤해소 없이 경제 도약 불가능

6월 리커창 중국 총리(오른쪽)가 산둥성 옌타이를 방문해 한 노점상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리 총리는 코로나19로 위기에 처한 빈곤층을 위해 이전까지 철거 대상으로만 여겨졌던 노점을 허용했다. 바이두 캡처
6월 리커창 중국 총리(오른쪽)가 산둥성 옌타이를 방문해 한 노점상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리 총리는 코로나19로 위기에 처한 빈곤층을 위해 이전까지 철거 대상으로만 여겨졌던 노점을 허용했다. 바이두 캡처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24일(현지 시간) 오후 8시 중국 베이징 도심에서 차로 약 1시간 거리의 산거좡(善各莊)을 찾았다. 한 아파트 건설현장 인근에서 여러 노점상이 밤 장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중국인이 즐기는 양꼬치 등 간단한 철판 요리에 술과 음료를 파는 곳이었다. 가격은 시내 음식점의 약 20%에 불과했다.

원래 시장이 아닌 곳이라 그런지 도처에서 트럭과 레미콘이 오갔다. 고객의 대부분은 공사장 인부들이었다. 양꼬치를 먹던 천(陳)모 씨는 “최근에 이런 노점상이 많이 생겼다. 우리처럼 돈 없는 사람들은 싼값에 허기를 채울 수 있어 좋고, 장사하는 사람은 큰 자본 없이 돈을 벌 수 있어 좋지 않으냐”고 했다.

천 씨와 달리 노점 주인은 한사코 인터뷰를 거부했다. 익명 인터뷰라고 거듭 말했지만 “당국이 무섭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부가 허가한 몇몇 지역을 제외하면 중국 대부분에서 노점상이 불법임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 코로나19 사태로 ‘절대빈곤’ 0명 목표에 먹구름

2012년 말 최고 권력자가 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집권 후 줄곧 노점상을 강하게 단속했다. 노점 단속 공무원을 일컫는 ‘청관(城管)’들은 무자비한 단속을 펼쳤고, 이 과정에서 종종 칼부림까지 날 정도였다.

중국은 단속 이유로 국민 건강과 위생, 조세 투명화, 부패 척결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국가 위신, 즉 미국을 능가하는 세계 패권국이 되려면 중국의 남루한 현실을 보이면 안 된다는 이유가 더 컸다는 분석도 있다. 특히 이 배경에는 2000년대 이후 중국 경제가 고도성장을 구가하면서 굳이 노점상이 아니더라도 서민 생계와 빈곤 문제를 중앙정부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자리했다.

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에 따르면 2015년 5600만 명에 달했던 절대빈곤 인구는 지난해 550만 명으로 대폭 줄었다. 이에 중국은 공산당 창당 100주년인 2021년까지 ‘절대빈곤’ 인구를 ‘0’명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면서 목표 달성에 먹구름이 드리운 상태다. 올해 1분기(1∼3월)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1992년 분기 성장률 통계 발표 후 최초로 마이너스 성장으로 떨어졌다. ―6.8%라는 수치도 문제였지만 성장 둔화 및 강력한 봉쇄 조치의 피해가 주로 서민층에 집중됐다는 점도 큰 문제로 꼽히고 있다.

지난달 블룸버그뉴스는 “코로나19, 남부 대홍수 등으로 중국 빈곤층이 큰 피해를 봤다. 이들 대다수는 중국이 지정한 절대빈곤층에 속하지 않아 정책적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 中 빈곤 기준 OECD와 달라…불신 고조
중국 정부가 제시한 올해 절대빈곤 기준은 연수입 최소 4000위안(약 69만 원). 월 333위안(약 5만6000원), 즉 하루에 11위안(약 1900원) 정도만 벌어도 절대빈곤에서 벗어났다고 보는 셈이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제시한 ‘빈곤’ 기준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OECD는 ‘절대빈곤’이라는 개념 없이 중위소득의 절반 이하를 모두 빈곤으로 친다. OECD 기준을 적용하면 연소득이 7000위안(약 118만 원) 이하, 즉 일일 소득이 19위안(약 3200원) 이하의 중국인은 모두 빈곤층에 속한다.

중국이 관련 통계를 밝히지 않고 있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대략 전 인구의 3분의 1인 최대 5억 명이 빈곤층에 포함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난해 절대빈곤 인구가 550만 명이라는 것이 중국 측 주장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 수치의 약 100배에 달하는 사람이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중국의 정책 목표는 절대빈곤을 0명으로 줄이는 데만 맞춰져 있다. 공산당 창당 100주년인 내년까지 절대빈곤층을 없애 전면적인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사회’에 진입했다는 치적을 내세우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벌써부터 일각에서는 ‘중국 5000년 역사에서 아무도 해결하지 못한 빈곤 문제를 시 주석이 해결했다’는 낯간지러운 칭송을 내놓고 있다. 빈곤 문제 해결을 권력자의 치적 홍보용으로 접근하다 보니 중국 정부가 절대빈곤층에 포함하지는 않지만 실제로는 생계가 매우 어려운 대다수 빈곤층은 오히려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 노점 두고 시진핑-리커창 갈등설도
노점을 둘러싼 수뇌부 갈등설도 제기된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올해 5월 전국인민대표대회 기자회견에서 “중국인 6억 명의 월소득이 1000위안이다. 이 돈으로는 집세를 내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중국인의 상당수가 빈곤 상태라는 점을 총리가 직접 국내외 언론 앞에서 밝힌 셈이다. 그는 이 거대 빈곤층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노점 경제’를 주창하며 “쓰촨성 청두에서 노점 경제를 통해 하룻밤에 10만 명의 일자리를 해결했다”고도 주장했다.

중국 베이징 도심에서 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외곽 산거좡에서 노점들이 모여 장사를 하고 있다. 베이징에서는 노점이 여전히 불법이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중국 베이징 도심에서 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외곽 산거좡에서 노점들이 모여 장사를 하고 있다. 베이징에서는 노점이 여전히 불법이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리 총리의 발언 며칠 후 중국 관영 매체에서는 돌연 이 단어가 사라졌다. 베이징시 관계자는 베이징일보에 “시내 각지에 노점이 설치되고 있는데 도로를 점령하는 위반 행위로 시민들의 불만이 크다. 법에 따라 위법 행위에 대해 조사 및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신문은 ‘노점 경제는 베이징에 적합하지 않다’는 평론도 잇따라 실었다.

또 리 총리가 올해 8월 대홍수 직격탄을 맞은 충칭을 찾아 진흙투성이가 된 고무장화를 신고 주민들을 격려했는데도 관영 매체는 일절 보도하지 않았다. 빈곤층 수를 공개하고 노점 경제를 언급해 시 주석과 척을 진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중국은 절대 권력을 휘두른 마오쩌둥(毛澤東) 사후 문화대혁명 같은 폐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상무위원 7인의 집단 지도체제를 택했다. 특히 서열 1, 2위인 주석과 총리는 사실상 권력을 양분하며 주석이 외교와 국방을 맡고, 경제 등 사회 전반은 총리가 담당해 왔다. 장쩌민(江澤民) 주석 시절의 주룽지(朱鎔基) 총리,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시절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각각 경제 전권을 행사하며 주석 못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리 총리는 시 주석이 집권한 뒤 내내 주변부로 밀려났고 시진핑 집권 2기가 시작된 2017년 말부터 노골적으로 홀대를 받았다. 총리가 관장했던 경제정책 수립은 시 주석의 경제책사 류허(劉鶴) 부총리가 맡았고, 은행감독위원회 주임 등 과거 총리가 하던 경제 부처 장관급 인사도 모두 시 주석이 직접 임명했다. 즉, 리 총리의 노점상 발언은 이런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 中 경제 발전 촉진한 노점
중국은 26일부터 29일까지 나흘간 베이징에서 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5차 전체회의(5중전회)를 개최한다. 2021∼2025년 중국 경제 5년을 이끌어갈 밑바탕인 제14차 5개년 경제계획이 발표되는 중요한 자리다.

관영 매체들은 이번 회의에서 정부가 내수 위주의 자립경제 구축을 핵심 목표로 제시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간 수출 위주의 국제 교역을 통해 경제 외형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내수 활성화, 빈부격차 해소 등 본격적인 체질 개선에 나서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다는 의미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 같은 계획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절대빈곤층뿐만 아니라 빈곤층 해소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빈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내수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중국 수뇌부는 싫어하지만, 수억 명에 달하는 빈곤층을 해소하기 위해 현실적으로 ‘노점 경제’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노점은 중국 경제 발전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현대식 중국 노점의 시초는 개혁개방 직후인 1979년 인성시(尹盛喜)란 공무원이 큰 사발에 담긴 차(茶)를 길거리에서 판매하면서부터 시작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인성시가 큰돈을 번 후 많은 서민이 잇따라 노점을 창업했고 이것이 중국 경제의 고도성장과 맞물려 현재 중국 경제의 근간이 됐다는 것이다. 알리바바 창업주 마윈(馬雲), 징둥 창업주 류창둥(劉强東) 역시 젊은 시절 노점상으로 출발했다.

과연 중국은 실제 빈곤층 수를 솔직하게 밝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내놓을 수 있을까. 중국이 진정한 패권국으로 거듭나려면 GDP, 성장률, 빈곤층 0명 같은 숫자 목표에 매달리기보다 투명한 정보 공개 및 행정체계 구축이 급선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kky@donga.com


#중국 내수경제#절대빈곤#빈곤해소#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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