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으로 우리는 양국(한미)이 함께 겪었던 고난의 역사와 많은 남성과 여성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해야 합니다.”
세계적 그룹 BTS가 한미 우호의 상징인 ‘밴플리트 상’을 받을 때 리더 RM(본명 김남준)이 밝힌 수상 소감이다. 제임스 밴플리트는 1950년 6·25전쟁 때 참전한 미8군사령관으로, 이 상은 미국 비영리단체 코리아소사이어티가 1995년부터 한미관계 증진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 수여한다.
이 평범한 소감에 중국 관영신문인 환추시보가 “‘양국이 겪었던 고난의 역사’라는 수상 소감에 중국 누리꾼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비난성 기사를 실으면서 논란이 일었다. 환추시보는 이후 ‘BTS는 중국 팬 필요 없다’는 한국 누리꾼 반응까지 기사화하면서 비난을 멈추질 않았다.
최근 무역과 동맹 문제로 미중 갈등이 심각해지자 중국은 최근 자국 내 이념적 단합을 위해 6·25전쟁을 들고나왔다. 6·25전쟁은 미국과 중국이 맞붙은 유일한 전쟁이며, 중국은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도움) 전쟁으로 부른다. 이런 상황에서 BTS의 발언같이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발언은 ‘싹부터 잘라야 할’ 것으로 여긴 것 같다. 중국은 최근 6·25전쟁을 ‘제국주의 침탈에 대항한 정의의 전쟁’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대를 잘못 고른 건 분명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보도에서 “한국의 K팝 거인에게 싸움을 건 중국이 패배했다. 이길 수 없는 상대를 골랐다”고 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두꺼운 팬층을 가진 글로벌 아이돌에게 중국이 낡은 이념의 폭격을 가한다면 중국의 이미지만 나빠진다는 WP의 기사 내용에 100% 공감한다. 이는 BTS가 그동안 쌓아온 탄탄한 실력과 인기가 바탕이 됐음은 물론이다. BTS 발언 논란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인 소국(小國) 대한민국이 걸어가야 할 길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2500년 전 중국 춘추시대 강대국은 진(晉)나라와 초(楚)나라였다. 기존의 강국인 진과 떠오르는 강국 초는 11번이나 전쟁을 벌일 정도로 앙숙이었다. 두 나라 사이에 끼어있던 정(鄭)나라는 늘 양쪽으로 얻어터지기 쉬운 신세였다. 하지만 정나라의 재상 정자산(鄭子産·미상∼기원전 522) 때는 달랐다. 사서에 많은 일화가 있지만 요약하자면 두 강대국에 할 말 다하면서도 무시당하지도, 억울한 불이익을 받지도 않았다. 공자가 ‘옛 사람의 유풍을 이어받아 백성을 사랑했다’고 극찬했던 명재상 자산의 외교적 성공은 ‘종진화초(從晉和楚)’라는 확고한 원칙과 내치의 성공에 따른 국력의 증가 덕이었다.
종진화초가 둘 다 친하게 지내자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진나라를 따르지만 초나라와도 화친한다는 것으로 선후를 분명히 했다. 정나라가 중원 국가이자 같은 문화권인 진나라와 동맹을 맺자 초나라가 정나라를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또 진나라에도 동맹을 근거로 합리적 요구를 해서 진나라가 양보했던 일화가 여러 번 등장한다.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가 최근 “반중(反中) 군사동맹에 동참해 중국이 보복하면 미국이 우리를 보호해줄 수 있겠나”라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문 특보의 큰 뜻은 모르겠지만 외교 문외한이 볼 때는 문 특보보다 2500년 전 자산의 원칙이 훨씬 더 외교답게 보인다. 6·25전쟁에 대한 중국의 태도는 적어도 역사와 군사 문제에선 중국과 대한민국이 함께할 수 없다는 점을 확실히 보여줬다. 문 특보의 말대로 대한민국이 정나라처럼 ‘존재적 딜레마’를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보복을 우려만 하고 있어야 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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