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여름, 친구가 만든 다큐멘터리를 극장에서 본 적이 있다. 동물을 사랑하지만 고기를 즐겨먹는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카메라를 든 친구가, 그 중심에 가족이 있었음을 깨닫고 하나씩 문제를 풀어가는 내용이었다. 가장 사적인 이야기가 스크린 위에 펼쳐지자 관객들은 울고 웃었다. 나도 내 이야기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친구에게 조언을 얻어 다큐멘터리 수업을 신청했다. 충무로 영상미디어센터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1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찍는 워크숍이었다.
다큐멘터리는 극영화보다 만들기 쉬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수업이 시작되니 어렵고 괴로웠다. 평소 가진 문제의식을 주제로 잡았지만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화면엔 뭐를 담아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고민만 하며 괴로워하던 찰나, 예전에 지원한 공모전에서 붙었다는 연락이 왔다. 적은 돈이었지만 단편영화 제작의 기회가 주어졌고 나는 잘됐다 싶어 그 핑계로 도망쳤다. 그렇게 중도 포기를 하게 되었고, 최종 시사회 날이 왔다.
참 가기 애매했다. 수업도 중간부터 안 나간 터라 선생님 뵐 면목도 없었다. 가지 말까도 생각했지만 같이 수업 듣던 사람들의 작품을 보고 싶었다. 그들도, 그들의 결과물도, 이미 SNS 친구를 맺은 선생님도 보고 싶어 철판 깔고 갔다. 갔는데… 역시 다큐멘터리는 어려운 장르였다. 중도 포기자들이 수두룩했다. 그중에서도 살아남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네 명의 작품을 보았다.
모든 게 상상 이상이었다. 학교 수업에서도, 영화 동아리에서도, 우리끼리 만들고 시사했던 경험은 있지만 이토록 자기 색 강하고, 흥미로운 일기장을 훔쳐보기란 실로 오랜만이었다. 다들 촬영도 편집도 처음이었을 텐데 어떻게 해낸 거지? 날것의 열정은 전염돼 엉망인 부분마저 사랑스러웠다. 끝까지 완주한 사람들을 보며 나 자신을 채찍질하려고 간 건데, 기분이 더 좋아져 버렸다. 제일 의외였던 건 선생님의 반응이었다.
부끄러워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어 계속 선생님 눈치를 보는 나를 너무나 반겨주었다. 마지막 수업에 올 줄은 몰랐다고. 고맙다고. 자기였으면 못 왔을 거란다. 그런데 중도 포기자들이 하나둘 교실로 들어오는 걸 보는데 너무 반갑고 예뻐 보이더란다. 동시에 내가 이러한 이유로 갔어야 했는데 못 갔던, 안 갔던 모임들이 생각나면서 그때 왜 그랬을까라는 생각도 했다고.
드라마 ‘청춘기록’을 보다가, 내 청춘은 언제였을까 생각하다가, 이 수업 듣던 날들을 떠올렸다. 나도 박소담처럼 열심히 산 줄 알았는데 일기장을 보니 도망치기 바빴구먼. 그렇게 좋아하고, 그렇게 하고 싶다면서 왜 자꾸 도망치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너무 잘하고 싶어서 그런 것 같다. 별로인 걸 보여주는 게 두려워서.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렇게 내 인생이 반복되는 건 슬픈 일이다. 가끔은 잘하지 말고 그냥 대충 해버리자! 만날 울면서 결국은 해치우는 ‘보건교사 안은영’처럼, 괴물을 물리치고 세계를 구한 다음, 점심 먹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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