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자기 작업실로 출근한 동안 아이의 끼니는 거실이나 다락방을 작업실 삼은 내 몫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랑 단둘이 밥 먹을 때가 많다. 설거지가 잔뜩 쌓이면 밖에서 해결한다.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는 식당이라면 동네에서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훤히 꿰뚫고 있다. 입맛에 맞는 식당 몇 군데는 단골집 삼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아이와 함께 동네 식당 순례를 다닌 지 10년 가까이 됐다.
처음에는 눈치를 많이 살폈다. 어느 식당을 가든 아이와 단둘이 밥 먹는 아빠는 웬만해서 찾아볼 수 없었고, 아이를 앞에 앉혀두고 반주까지 한잔하는 아빠는 나밖에 없었다. 반주 한잔하다 보면 사장님이나 종업원이 달걀프라이를 아무 말 없이 툭 던져 놓고 가거나 간단한 안주를 서비스라면서 챙겨줄 때도 있다. 내가 홀아비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아이와 함께 다니니까 그만큼 눈에 띄었는지 다음에 다시 가면 밑반찬도 다른 테이블에 비해 수북이 챙겨준다. 몇 번 가다 보면 아이가 마실 음료수는 기본으로 챙겨주고, 오랜만에 가면 왜 한동안 뜸했냐며 반가워하신다. 홀아비 코스프레로 인한 각종 혜택이 이만저만 아니다.
다만 그럴수록 진실을 말하기 어렵다. 이따금 난데없이 호구 조사가 들어오는데, 가령 사장님이나 종업원이 아이한테 “엄마는 어디 갔니?”라고 대놓고 물을 때가 있다. 각종 혜택을 계속 누리고 싶은 나는 아이의 대답을 가로막으며 대충 얼버무린다. 그럼 나는 말 못할 복잡한 사연이 있는 홀아비가 되고, 종종 나는 내 홀아비 연기에 흠뻑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소주 한 잔을 마셔도 나를 지켜보고 있을 사장님과 종업원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최대한 씁쓸한 표정으로 최선을 다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진실은 영원히 숨길 수 없다. 아이와의 단골집을 아내와 함께 갈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 사장님과 종업원은 다음 화에 곧 헤어질 것 같던 드라마 주인공들이 극적으로 화해라도 한 것처럼 안도의 눈빛을 보낸다. 애초에 싸운 적도 없지만, 그걸로 내 홀아비 연기는 끝이다.
그런데 아내는 아이와 단둘이 밥을 먹으러 다녀도 앞서 말한 각종 혜택을 누려본 적이 없다고 한다. 아내도 나처럼 반주 한잔하고 싶어서 술이라도 한 병 시키면, 식당 안의 모든 시선이 자기한테 집중되는 것 같아서 엄두를 내기 어렵다고 한다. 엄마가 아이와 다니는 건 너무 당연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아이와 다니는 엄마는 술을 함부로 마시면 안 되는 걸까. ‘홀어미 코스프레’는 안 먹히는 셈이고, 지금은 나도 홀아비 코스프레가 통 안 먹힌다. 지난여름에 정든 동네를 떠나면서 단골집과는 작별 인사도 못 나누었다. 아이는 부쩍 자라서 얼핏 보면 더 이상 아이가 아니다. 새로운 동네에서는 반주를 아무리 마셔도 달걀프라이 서비스는 기대하기 어렵다. 좋은 시절 다 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