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탄소 전쟁의 시작[오늘과 내일/이성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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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이야기? 이미 변화는 진행 중
산업혁명 300년, 탄소혁명 주도해야

이성호 정책사회부장
이성호 정책사회부장
“2050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나아가겠습니다.”

지난달 2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내용이다. 문장은 짧지만, 의미는 간단치 않다. 한국이 처음으로 탄소 중립 목표 시기를 밝힌 것이다. 현실적으로 말하면 세계 주요 국가와 기업이 뛰어든 글로벌 탈(脫)탄소 전쟁을 향한 ‘참전 선언’이다. 문 대통령은 3일 국무회의에서도 “결코 쉽지 않은 무거운 약속”이라고 말했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제로(0)’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 생리현상 중에도 온실가스가 나온다. 전 세계 가축이 온실가스 절반을 내뿜는다는 분석도 있다. 세계 인구는 약 70억 명, 가축은 약 280억 마리다. 일상생활과 산업활동에서 온실가스 배출은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배출한 만큼 줄여야 한다. 그렇게 순수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이 탄소 중립이다. 그래서 ‘넷(net) 제로’ 선언이다.

뜬금없이 나온 게 아니다. 70개 넘는 국가가 우리보다 먼저 선언했다. 동북아 3개국은 비슷했지만 굳이 순서를 따지면 한국이 꼴찌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는 지난달 26일 취임 후 첫 국회 연설에서 처음 밝혔다. 한국과 같은 2050년까지 온실가스 실질 배출량을 없애겠다는 목표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9월 22일 유엔총회 화상연설을 통해 “2030년 전까지 배출량의 정점을 찍고 2060년 전까지 탄소 중립을 실현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중국은 세계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많다. 2018년 기준 약 100억 t. 두 번째로 많은 미국이 약 54억 t이니 비교 불가인 1위다. 그런 나라가 순(純) 배출량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수도 의심받는 중국 통계여서 잘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판단은 다르다. 그린뉴딜 정책 수립에 참여하는 국내 한 전문가는 “중국의 선언이 그냥 나왔을 리 없다. 정부 차원에서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탄소 중립으로 가도 세계 경제를 주도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섰을 것’이라는 뜻이다. ‘겨울이면 석탄난로 팍팍 때는’ 나라의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치부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중국의 태양광 발전량은 2018년 세계 발전량의 3분의 1이다. 세계 최대의 태양광 모듈 생산국이 중국이다.

계산이 선 곳은 중국뿐이 아니다. 글로벌 기업도 마찬가지다. 에너지 기업은 물론이고 자동차와 화학 철강 식품 섬유까지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 국내도 다르지 않다. SK그룹 8개 관계사는 2050년까지 사용 전력량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기로 했다. 몇 년 전까지 수소차에 매달리던 현대자동차는 이제 전기차에도 집중하고 있다. 둘 다 충분히 가치 있는 시장이 된 것이다.

기업의 발 빠른 변화에는 이유가 있다. 탄소 중립을 주도하는 유럽연합(EU)은 2023년 탄소국경세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국가에서 수출한 제품에 관세를 매기는 것이다.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고 의회마저 민주당이 차지하면, 환경 정책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때의 정반대로 향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후퇴시킨 걸 만회하려 더욱 속도를 낼 가능성도 있다.

2050년이 너무 멀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출발선이 아니라 결승선이다. 1750년 1차 산업혁명 이후 300년에 맞춰 예고된 탄소혁명이다. 국가 간, 기업 간 총성 없는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한국의 첫발은 오히려 늦었다.

이성호 정책사회부장 starsky@donga.com
#탈탄소#전쟁#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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