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고래의 미역[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165〉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4일 03시 00분


그리움은 사랑의 대상으로부터 떨어져 있기에 발생하는 감정이다. 이민자들이 모국을 그리워하는 것은 그 거리 탓이다. 그나마 그들을 모국과 이어주는 문화가 있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어디에 살든 생일날 미역국을 먹는다. 그게 문화다. 재미교포 에밀리 정민 윤의 시 ‘시간, 고래 속에서’는 그 문화에 관한 속 깊은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화자에게는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 한국인이지만 한국어를 잘 모르는 이민자다. 화자는 연인이 “물오르다”는 말을 속삭이자, 나무에 물이 오르는 봄이 되면 그의 생일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미역국을 먹고 우리의 피에 산소를 공급하게 되겠지”. 생일에 미역국을 먹는 걸 보면 그들은 영락없는 한국인이다. 한국어가 조금 서툴더라도 미역국이 그들을 한국으로 이어준다. 미역국 문화는 그들이 어디를 가든 따라다니는 움직이는 고향이다. 화자는 연인에게 말한다. “당신은 한국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수백 년 전에 고래들이 새끼를 낳고 미역을 먹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

이 시가 환기하는 것은 미역국과 관련된 신화다. 조선시대 실학자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나오는 산부계곽변증설(産婦鷄藿辨證說), 즉 임산부가 먹는 닭고기와 미역국 이야기. 누군가가 물속에 들어갔다가 고래의 배 속으로 빨려들어 갔는데 새끼를 막 낳은 어미고래의 배 속은 미역으로 가득했다. 미역으로 인해 악혈, 즉 굳은 피가 묽고 맑아져 있었다. 그는 배 속에서 나와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래서 아이를 낳은 후 계(鷄), 즉 닭을 먹는 중국인들과 달리, 한국인들이 곽(藿) 즉 미역을 먹게 됐다는 거다.

그런데 그런 지혜로움을 전해준 고래들이 해변으로 밀려왔다. 시인은 “그 고래들이 더운 겨울 속에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지구 온난화 탓이다. 시인은 어느 사이에 모국과 모국어에 대한 그리움을 묵시적 환경의 문제와 연결시킨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어미고래#미역#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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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추천 많은 댓글

  • 2020-11-06 18:08:48

    어머니가 끓여주신 소고기 미역국이 그립네요~

  • 2020-11-06 18:08:37

    역시 생일엔 미역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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