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로또는 사야 한다[오늘과 내일/박중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5일 03시 00분


집권 후반기 국민의 정책 답답증 커져
무오류 확신 접고 정책기조 전환해야

박중현 논설위원
박중현 논설위원
믿음 깊은 청년이 있었다. 마음씨 착하지만 돈 버는 재주는 별로였다. 생활이 어려워지자 산에 올라 기도하기 시작했다. “신이시여, 제발 로또 한 번만 당첨되게 해주십시오.” 1주일, 한 달, 반년이 지나도록 매일 기도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꼭 1년 되던 날 신이 나타났다. 답답하고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신은 말했다. “네 마음은 잘 알았다. 아무리 그래도 로또는 사야 하지 않겠니?”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2050년 탄소중립 달성’ 목표를 제시한 날 오래전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대통령은 그제 국무회의에서도 “기후위기 대응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탄소중립 실천 의지를 강조했다. 진정성 넘치는 발언에서 답답증을 느꼈다.

30년 뒤라 해도 배출한 만큼 온실가스를 흡수해 순(純)배출량을 제로로 만드는 건 대통령 말처럼 “결코 쉽지 않은 무거운 약속”이다. 많은 선진국이 약속한 만큼 한국도 가만있을 순 없다. 걱정되는 건 석탄,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을 태양광 풍력 수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기에 한국의 자연 조건은 대단히 열악하다는 점이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탄소중립의 요체를 ‘탈(脫)석탄’으로 보고 온실가스 배출이 없는 원자력발전을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권한다. 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를 비롯해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겪은 일본마저 원전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감사원의 월성 원전 1호기 조기폐쇄 감사 결과 발표 과정에서 확인된 것처럼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누구도 건드리지 못할 성역이 됐다. 그러면서 탄소중립을 예고하니 체증(滯症)을 느끼는 것이다.

신념이 굳은 사람은 매력적이다. 다만 눈앞에 해결할 난제를 놓고 파트너가 되면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신념의 근거가 불명확하거나 상식과 차이가 크면 그렇고, 그 파트너가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부인 경우 더욱 그렇다. 최근 부동산 정책에 답답해하는 국민이 늘어난 게 이런 이유다.

6·17부동산대책의 핵심은 ‘갭 투자’ 규제였다. 다주택자를 집값 상승 주범(主犯)으로 보고 추진한 대책들이 효과를 내지 못하자 정부는 전셋값과 집값 차이가 좁혀진 틈을 타 집을 산 갭 투자자를 종범(從犯)으로 간주해 대출을 억제했다. 국민이 납득할 수 없었던 건 갭 투자가 월세→전세→자가로 이어지는 보통 사람들의 정상적 내 집 마련 과정이어서다. 게다가 갭 투자자는 전셋집 공급원이었다. 틀어막으면서 전세 매물이 더 줄었다. 전셋값이 들썩이자 정부와 여당은 임대가격 규제를 시작했다. 임대차 3법 도입이 다시 전세대란으로 이어지자 여권은 ‘월세가 전세보다 나쁜 게 아니다’라는 주장을 폈다. ‘너에게 좋은 건 내가 더 잘 아니까 불편해도 참아라’는 식이다. 자기 확신이 강하고 반성을 모르는 사람 곁에 있다 보면 이런 말을 듣게 된다.

그릇된 믿음에서 출발해 기대와 정반대 효과가 났는데 정부가 인정하지 않는 정책이 적지 않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소비가 늘어 경제가 성장한다’는 소득주도 성장론은 일자리 감소와 소비 위축 등 초라한 성적표를 받고 여권 내에서도 거의 사어(死語)가 됐다. ‘비정규직은 나쁜 것’이란 믿음으로 추진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공기업 정규직만 늘렸다.

집권 후반기 대통령 발언에 ‘기필코’ ‘반드시’ 같은 말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초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정책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자기 다짐처럼 들린다. 하지만 국민들은 3년 반의 경험을 통해 이미 무엇이 실패한 정책인지 판단을 내렸다. 국민의 답답한 속을 뚫어줄 성과를 내고 싶다면 줄곧 해오던 방식만 고집해선 안 된다. 절대 틀릴 리 없다고 믿어온 기본적인 신념까지 하나하나 뜯어봐야 한다. 거기에 문제와 정답이 있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2050년 탄소중립 달성#국회 시정연설#문재인 대통령#탈 석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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