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그제 국회 운영위원회의 청와대 국정감사에서 “(8·15 광화문) 집회 주동자들은 도둑놈이 아니라 살인자”라고 말했다. 노 실장은 이어 “광화문 집회에서만 확진자가 600명 이상 나왔다”며 “허가되지 않은 집회 때문에 경제성장률만도 0.5% 하락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비판했다.
코로나 사태 와중에 일부 강경 보수 인사들이 도심 한복판에서 대규모 인파가 모이는 집회를 강행한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법원은 당시 신청된 광화문 집회 10건 가운데 2건은 허용했다. 강경 친문 세력은 그 판결을 한 판사를 집중 공격해 사법부 독립 침해 논란을 일으켰다. 설령 불허된 집회를 주도했고 집회를 통해 코로나19가 전파됐다고 해도 이들을 살인자라고 비난한 것은 정치적 반대세력을 근절시켜야 할 ‘적’으로 몰아붙인 정치적 선동에 가깝다. 광화문 부근에선 민노총이 주도한 집회도 열렸지만 노 실장은 그들에 대해선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광화문 집회가 경제성장률 하락 요인이라는 노 실장의 발언은 더 기가 막힌다. 코로나 경제위기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정부의 잇단 경제정책 실패가 성장률을 잠식한 원인이었는데도 어떻게 광화문 집회 탓으로 돌릴 수 있나. 노 실장의 ‘살인자’ 발언은 사적인 술자리가 아니라 전 국민을 상대로 한 국정감사장에서 나왔다. 국감장에서 그런 극단적 표현을 사용한 것은 국민 전체를 아울러야 할 고위 공직자의 본분을 망각한 처사다.
노 실장의 발언은 이 정권 핵심부가 정부 비판 세력에 대해 갖고 있는 증오에 가까운 시각을 여실히 보여 준다. 그런 청와대 분위기를 알고 있기에 경찰도 유례없는 차벽과 불심검문으로 코드를 맞춰 온 것 아니겠는가. 북한이 서해상 우리 공무원을 죽인 명백한 살인 행위에 대해선 ‘사망’이라며 수위 조절에 급급해온 청와대가 자국민에 대해선 서슴없이 증오의 언어를 내뱉는 것을 보면 정권 핵심부가 최소한의 균형 감각과 절제마저 상실한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