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하고 까다로운 화물 손님들[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40〉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6일 03시 00분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선장이 1등 항해사인 나에게 “물을 싣고 남태평양의 작은 섬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식용수를 운송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태평양의 작은 섬들은 물이 나지 않는다. 나는 선원들을 데리고 선창을 깨끗이 청소하고 식용수에 닿아도 문제없는 페인트를 칠했다. 식용수를 싣게 되면 선창에 가득 실어야 한다. 선창의 절반만 싣게 되면 위험하다. 배가 기울어지면 물이 모두 기울어진 곳으로 밀려서 배가 전복될 우려가 있다.

원유를 싣는 선박에도 승선했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는 걸프만에서 사막을 지나 홍해에 면해 있는 사우디 지다에까지 원유를 이동시키는 파이프라인을 건설했다. 걸프만이 봉쇄되어도 원유 공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지다에 기름 저장고를 설치한 것이다. 걸프만에서 사우디 서부의 얀부항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실어 날랐다. 원유는 외부로 유출되면 유류 오염 등 큰 피해가 발생한다. 식용수는 바다에 배출되어도 오염의 문제가 전혀 없다. 식용수 운송은 비교적 안전한 운송인 셈이다.

재즈로 유명한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식용유용 옥수수 3만 t을 싣고 한국으로 왔다. 항해는 순조로웠다. 그런데 옥수수가 손상되어 손해배상청구를 받았다. 선박에는 추진력을 내기 위한 선박연료유가 필요하다. 선박의 선창 아래 구획을 만들어 이를 저장해 둔다. 이를 항상 따뜻하게 유지하기 위해 열기를 가한다. 그 위에 놓인 옥수수가 온기에 싹이 터 버린 것이다. 바다에서 항해 중이었음에도 따뜻한 대지의 품속인 양 옥수수가 착각해 머리를 살며시 내밀어 버린 것이다. 옥수수를 나무랄 수도 없다.

원목을 실으라 하면 긴장부터 된다. 벌목을 한 수출자는 원목을 다발로 만들어 미국 컬럼비아강을 따라서 하구인 롱뷰항으로 보낸다. 뱃전에 원목을 띄워두고 한 다발씩 배에 싣게 된다. 마지막 날이 중요하다. 하루 전 1등 항해사는 선적을 중지하고 얼마를 더 실을지 계산한다. 갑판 위 높은 곳에 원목이 놓이기 때문에 무게중심이 위로 가서 선박 전복 사고가 발생하기 쉽다. 겨울에 알류샨열도를 지날 때면 선박의 앞쪽을 때리는 파도가 남긴 물들이 얼음이 되어 갑판상의 무게를 더하게 된다. 무게중심은 더 위로 올라와 선박이 전복될 위험이 더 높아진다. 선장은 아주 조심스럽게 항해해야 한다. 횡파를 절대 맞으면 안 된다. 지금도 아찔하다.

선장이 회사로부터 ‘COW 가능한가’라는 전보를 받았다. 선장은 우리 배 같은 유조선으로 어떻게 소를 운송하느냐고 중얼거렸다. 선장은 “본선은 유조선이라서 가축은 운송할 수 없다”고 답을 보냈다. 회사에서 바로 답장이 왔다. “Crude Oil Washing(COW)이 가능한가.” 그제야 선장은 COW가 원유로 선창을 소제하는 방법임을 알았다. 선장은 “우리 배는 아직 그런 장치가 없다”고 답을 했다. 실제로 소를 운송하는 가축운반선을 가끔씩 바다에서 만나기도 하기에 선장이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도 없다. 이렇게 다양한 화물을 안전하게 보관하여 운송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우리는 진정한 바다 사나이가 되어 갔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화물#손님#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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