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충청북도 전체 인구와 비슷한 155만 명이 연관된 금융 사고가 터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정부가 수습하려고 노력하겠지만 혼란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언론이 대서특필할 것이고, 각종 분석 기사도 쏟아질 것이다. 인터넷에서 갑론을박은 불 보듯 뻔하다.
중국에 앤트그룹이라는 유명한 회사가 있다. 이 회사는 당초 5일 홍콩과 상하이(上海) 주식 시장에서 기업공개(IPO)를 통해 344억 달러(약 38조6000억 원)를 끌어모으려고 했다. ‘인류 역사상 최대 자금 조달’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큰 규모다. 사전 공모에 155만 명이 참여했다. 모든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는데, IPO 이틀 전에 중국 정부가 갑자기 중단시켰다. 공식적으로 밝힌 이유는 “자본시장의 안정을 수호하고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중국은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 언론 통제가 큰 이유일 것이다. 여기에 당국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대중들 사이에 내재된 ‘중국 공산당의 결정에는 오류가 없다’는 신화(神話)화된 신념도 한몫하는 것 같다. 쉽게 말해 “당의 결정에 오류는 없으니, 당이 결정하면 믿고 따르라”는 식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투자자 보호’라는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식 이유만으로 155만 명의 불만을 이처럼 완벽히 틀어막을 수는 없다.
앤트그룹의 IPO 중단 배경에 마윈(馬雲) 알리바바 창업주의 중국 당국 비판이 있었다는 점을 보면 이런 이유가 더 와닿는다. 앤트그룹은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의 핀테크 관련 계열사다. 마윈이 직간접으로 보유한 지분이 50.5%다. 사실상 마윈의 회사인 셈이다.
이런 마윈이 지난달 24일 왕치산(王岐山) 국가부주석, 이강(易綱) 런민은행장 등 중국 고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행사 자리에서 “기차역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공항을 관리할 수 없듯, 중국 금융당국이 과거 방식으로 미래를 관리해 나갈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전체적으로 기존 금융기관들과 성격이 다른 핀테크 기업에 당국이 완화된 규제를 적용해 더욱더 자유롭게 사업을 펼 수 있게 해 달라는 취지였다.
기업인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얘기였지만, 신화화된 신념으로 똘똘 뭉친 어떤 이들에게는 중국 공산당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비쳤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앤트그룹의 IPO 중단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 조치로 알리바바 주식까지 폭락하면서 마윈 개인은 약 3조 원, 알리바바는 86조 원이 주식 시장에서 증발했다. ‘무오류의 결정체’인 중국 공산당을 비판한 대가는 컸다.
문제는 이런 신념을 가진 중국인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수습 과정에서 중국 공산당은 미국이나 유럽 등 다른 선진 국가들과 비교할 수 없는 ‘공산당식 통제의 효율성’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또 이번 미국 대선 과정에서 나타난 혼란 상황도 공산당 체제가 우월하다는 인식을 국민들 사이에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무서운 중국인’들을 상대하는 것이 갈수록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 우리에게 남은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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