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조장하는 ‘부동산 경찰’[현장에서/김호경]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10일 03시 00분


집값 담합, 허위 호가 등 시장 교란 행위를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 발의되면서 ‘과잉 처벌’ 우려가 커지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집값 담합, 허위 호가 등 시장 교란 행위를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 발의되면서 ‘과잉 처벌’ 우려가 커지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김호경 산업2부 기자
김호경 산업2부 기자
여당 의원 발의로 집값 담합 처벌 대상을 확대한다는 기사가 나간 9일, 한 독자로부터 e메일을 받았다. 본문에 아무 내용 없이 사진 3장만 달랑 첨부되어 있었다. 수도권 내 아파트 단지 엘리베이터에 붙은 안내문이었다. ‘정보 공유’라는 설명과 함께 아파트의 최근 실거래가와 시세가 나란히 적혀 있었다. 이런 행위도 제정안에서 처벌하겠다고 한 집값 담합으로 여기고 제보 차원에서 보낸 듯했다.

엄밀히 얘기하면 이는 처벌 대상이 아니다. 집값 담합의 경우 현행 공인중개사법보다 처벌 요건을 넓히긴 했지만 단순 의견 교환이나 정보 공유까지 처벌하지 않는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부동산거래 및 부동산서비스산업에 관한 법률’ 제정안에 따르면 온라인이나 안내문을 통해 △특정 가격 이상(이하)으로 거래하도록 하거나 △시세보다 현저하게 높게 표시, 광고하도록 하거나 △특정 공인중개업소에만 중개의뢰를 하거나, 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만 처벌한다고 명시해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제정안을 두고 시장에서는 ‘처벌 만능주의’ ‘부동산 경찰’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단톡방에서 ‘얼마에 집을 내놓아야 할지’ 묻고 답하는 일상적인 정보 공유까지 형사 처벌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크다.

진 의원과 국토교통부 측은 부동산 시장에서 갈수록 교묘해지는 불공정 및 시장 교란행위를 근절해 소비자 피해를 방지하겠다는 취지라며 이런 반응에 대해 “과도한 우려”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이번에 새로 생긴 처벌 조항도 나름대로 구체적이다. 집주인이 집값을 띄울 목적으로 거래 가능성이 희박한 호가로 매물을 반복해 올리면 3년 이하의 징역과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조항이 대표적이다. 법에 ‘반복’이라고 명시되어 있는 만큼 집주인이 로열층이거나 집수리 등의 이유로 시세보다 높은 호가로 매물을 내놓는 것 자체가 처벌되진 않는다. 집주인이 다른 사람과 공모해 파는 것처럼 매매 계약을 체결하고 실거래 신고를 할 경우 처벌하는 규정도 신설됐다. 단순 변심으로 계약이 파기된 경우까지 처벌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런 취지와 달리 실수요자의 불안감은 가시지 않고 혼란은 더 커지고 있다. ‘투기 세력’을 잡겠다는 정부 규제가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을 어렵게 만든 것처럼 이번 제정안도 실수요자를 겨냥한 게 아니냐는 불신이 뿌리 깊은 탓이다. 그간 공정거래법 등에서 담합으로 처벌하는 건 기업이었지만 제정안은 그 대상을 일반 개인까지 확대한 영향도 있다. 시장의 불신을 해소하지 못한 채 정부와 여당이 계획대로 내년 초 부동산 상설 감독기구 출범을 강행한다면 기존 규제에 감시와 처벌이라는 공포감까지 더해져 부동산 시장은 더욱 왜곡될 수밖에 없다.

 
김호경 산업2부 기자 kimhk@donga.com
#부동산거래 및 부동산서비스산업에 관한 법률#실수요자#공정거래법#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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