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패배는 민주주의 복원성 입증했지만
역대 두 번째 많은 득표로 포퓰리즘 효용성 과시
文정권, 선동정치 폐해 반면교사 삼는 대신
편가르기 전술의 효용성만 배워 역주행 우려
트럼프의 대선 패배를 계기로 트럼프의 행태와 문재인 정권의 유사성을 많이들 얘기한다. 하지만 단순 동일시는 위험하다. 서로 닮지 않아서가 아니다. ‘민주주의 본산이라는 나라 대통령도 저러는데, 우리는 그에 비하면 약과네…’ 식의 착시효과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산사태 때 골조가 튼튼한 집과 낡은 판잣집이 받는 대미지는 다르다. 미국은 아무리 대통령이 전횡을 해도 견제하고 제어하는 의회·사법부 등 시스템이 굳건하다.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관료 상당수는 쫓겨날지언정 헌법 가치와 직업적 양심을 굽히지 않았다.
민주주의가 건재하려면 워치독 기능이 살아 있어야 한다. 한국도 심지어 과거 군사정권 때도 재정건전성을 지키기 위해 권총을 들이대도 버틴 관료, 끝내 부당한 영장 발부를 거부한 판사들이 있었다. 그런 이들이 워치독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관료집단은 권력이 재단해준 꽉 조이는 제복 내에서만 움츠리고 있다.
트럼프와 문 정권의 통치술은 거의 유전자가 일치한다. 국민 편가르기, 지지층을 겨냥한 직접적 선전 선동, 프레임을 짜서 가공의 사실 세계를 구축하는 전술 등등.
여권 핵심들의 행태에선 트럼프적 특질이 다수 발견된다. 고집은 문 대통령, 막말 거짓말은 추미애, 내로남불 후안무치는 조국, 궤변 선전선동은 유시민 김어준 등등. 이들을 다 모아 뭉뚱그려서 한 개인으로 형상화하면 트럼프의 모습이 될 듯하다.
정책 방향으로는 극과 극인 트럼프와 문 정권이 닮은꼴 DNA의 통치술을 지닌 것은 우연이 아니다. 평생 비즈니스 정글에서 먹느냐 먹히느냐 싸움을 해온 트럼프나, 투쟁으로 단련된 운동권 출신 친문들은 벨로시랩터처럼 유능하다. 수단과 목적의 도치(倒置)를 전혀 거리끼지 않으므로 변신에도 뛰어나다.
그처럼 유능한 싸움꾼 트럼프를 패퇴시킨 미 대선은 민주주의의 위대한 복원성을 입증해줬다. 하지만 동시에 민주주의가 백사장의 유리성처럼 언제든 파도에 휩쓸릴 수 있는 취약한 상태임도 드러내줬다.
트럼프는 어제 기준으로 7230여만 표를 얻었다. 가족 결혼 종교 공동체를 중시하는 전통적 보수표를 바탕으로 깔았다 해도, 그렇게 ‘망나니짓’을 하고도 역대 미 대선 사상 두 번째로 많은 득표를 한 것은 집요한 타깃층 겨냥 정책이 먹혔음을 방증한다.
중국 수출 배제 등 트럼프의 경제 정책은 백인 노동자뿐만 아니라 국제 경쟁력이 약한 기업들에도 ‘그래도 내 이익을 지켜줄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게 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승패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국가의 품격, 민주주의 가치보다는 당장 지지층의 갈증을 식혀주는 포퓰리즘이 얼마나 강한 힘을 발휘하는지를 보여준 것이다. 민주주의 가치나 정직, 원칙 보다는 당장의 일자리 증가와 일상의 안정성, 질서 유지를 중시하는 표심이 엄존함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한국의 친문들이 트럼프 패배를 보며 자성하고 선동과 편가르기 정치를 멈출지, 아니면 포퓰리즘 선동정치의 효험이 재확인됐다며 더욱 그 추세를 강화할지에 대한 답은 불문가지다.
어차피 표가 안 나올 계층을 ‘이지메’해 쌤통심리를 충족시켜 주고, 잠재적 지지층의 상대적 박탈감을 동물적 감각으로 읽어내 부추기고 영합할 정책들을 쏟아낼 것이다.
프레임 전술로 허구의 집을 지어 오직 친문의 선글라스로, 친문의 내재적 관점만으로 뉴스를 소화하도록 관영방송 친여신문 맘카페 등에서 총력 홍보전을 펼칠 것이다.
도를 넘은 흑인 시위와 약탈이 미국 보수층의 불안감을 부추긴 것 같은 효과를 노려 태극기 부대, 극우 집단의 세(勢)와 위협을 과장할 것이다.
미국 민주주의 복원을 가능케 한 열쇠는 양식 있는 중도보수 성향의 시민들이다. 보수의 상징인 존 매케인 전 상원의원 미망인의 바이든 공개 지지가 상징하듯이 상당수 지성인들이 돌아섰다. 규범과 질서를 무시하고 예측가능성을 파괴하고 품격을 팽개친, 능력있지만 변칙적인 리더 보다는 당이 달라도 원칙과 합의 예측 가능성이 있는 후보를 택한 것이다.
하지만 트럼피즘이 먹혀들 수 있었던 토양, 즉 양극화, 이민자, 중국 문제 등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이들 중도보수는 다시 공화당으로 돌아설 것이다. 이번에 미국인들은 의회선거에선 공화당을 택했다. 트럼프는 싫지만 정책은 공화당을 택한 것이다. 바이든은 그런 중도보수층의 살얼음 같은 임시적 지지와 워런, 샌더스 같은 당내 사회주의 성향 강경파들 사이에서 균형 잡기를 해야 한다.
트럼프의 전횡에도 미국의 민주주의는 체크앤드밸런스 시스템이 건재해 버틸 수 있었고 복원의 길로 접어들었다. 한국은 탄핵이라는 호조건 속에서도 41.1%, 그것도 통합을 표방하기 전에는 20~30%대의 박스권에 갇혀 있던 후보가 마치 개국(開國)혁명을 이룬 듯 시스템과 가치를 마음대로 바꾸려 하는데도 입법부도 사법부도 관료사회도 아무런 견제를 못 하고 있다. 친문이 트럼프의 패배를 자성의 계기가 아니라 선동·편가르기를 더 확실하게 해야 뺏기지 않는다는 그릇된 교훈으로 학습한다면 사회 전체에 더 심한 분열과 대립을 불러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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