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의 시 ―박노해(1957∼) 문풍지 우는 겨울밤이면/윗목 물그릇에 살얼음이 어는데/할머니는 이불 속에서/어린 나를 품어 안고/몇 번이고 혼잣말로 중얼거리시네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소금창고 옆 문둥이는 얼어 죽지 않을랑가/뒷산에 노루 토끼들은 굶어 죽지 않을랑가
아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시낭송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네
찬바람아 잠들어라/해야 해야 어서 떠라
11월, 밤이 길어지는 계절은 고민도 생각도 길어지라고 생겨났는가 싶다. 사는 게 어쩜 이리 어려울까. 대체 어째야 잘사는 건지. 어린 자식 살피기도 하루하루 어렵고, 어리지도 않은 내 마음 살피기는 더 어렵다. 손발이 묶인 듯 마음이 막힌 상황에서 이 시를 만났다. 왜 이제 봤을까. 이 시는 그 자체로 박노해다. 할머니다. 아니, 사람이고 정답이다.
어렸을 때는 지금보다 더 추웠던 느낌이다. 시인의 겨울은 얼마나 추웠는지 방에도 살얼음이 생겼다. 그의 할머니는 어린 손자가 걱정되어 품에 꼭 품고 주무셨다. 손자는 마음의 눈이 밝은 사람, 추운 날을 견디는 건 사람과 사람의 체온이 있어서라는 사실을 배웠을 거다. 매일 밤 자장가처럼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외풍 있는 방이나마 차지하지 못한 사람들은 어찌 되었을까. 이 무서운 밤 무사히 나고 있을까. 거지도, 문둥이도, 토끼도 죽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는데. 할머니가 이렇게 중얼거릴 때 어린 시인은 어땠을까. 곤란한 표정이 되어 같이 걱정을 했을 거다. 굴뚝 옆에 몸을 웅크리고 있을 거지를 떠올렸을 거다. 할머니 마음에 이심전심되어 죽지 마라, 해야 떠라 빌었을 거다. 박노해가 노동운동을 하고 시인이 되었던 원천을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우리는 시 속의 할머니에게서 인생의 롤모델을 발견할 수도 있다. 다시,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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