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칼럼]비정상, 정상화하는 美 일상화하는 韓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16일 01시 00분


‘아메리카 제국’ 몰락 예고한 트럼프
文 외교안보 정책의 사실상 ‘뒷배’
트럼프 ‘해고’한 美국민의 복원력
한국은 國政 각 분야 비정상 일상화
文 ‘지지하니까 옳다’는 위험한 팬덤

박제균 논설주간
박제균 논설주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보면 로마 황제 콤모두스가 생각난다. 로마 5현제 중에서도 가장 후대 평가가 높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아들이었으나 폭정과 실정(失政) 12년 만에 암살당한 뒤 치세(治世)의 기록을 소멸시키는 ‘기록말살형’에까지 처해진 폭군. 어떻게 아우렐리우스 같은 위대한 황제가 그렇게 못난 아들에게 제위를 물려줬을까 하는 의문을 모티브로 한 영화에도 자주 등장한 인물이다.

위대한 아버지 콤플렉스에 시달렸을 콤모두스와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의 성격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아버지 프레드다. 자수성가해 부(富)를 일군 그의 승리 지상주의 교육이 도널드를 ‘괴물’로 키웠다는 게 주변의 평이다. 세상에는 ‘승리자’와 ‘패배자’ 두 부류의 인간만이 존재하며, 자신은 항상 승리자라는 착각과 과대망상이 대선 불복까지 이어지고 있다.

‘명상록’을 남긴 아우렐리우스는 ‘철인(哲人) 황제’라는 별명에 걸맞지 않게 제위 기간 대부분을 전장에서 보내다 게르마니아의 겨울 숙영지에서 숨을 거뒀다. 그런 아버지를 화장한 불길이 꺼지자마자 콤모두스는 ‘전쟁을 계속하라’는 선황의 유지(遺旨)를 어기고 철군을 결정했다. 이후에도 제국의 안전을 위해 ‘팍스 로마나’를 추구해 온 로마 황제의 책무를 팽개쳤다. 그러고는 자신이 환생이라는 헤라클레스의 분장을 하고 직접 검투사로 싸우는 기행까지 펼쳤다.

트럼프 대통령도 세계 평화와 질서 유지에 앞장서 온 슈퍼파워 미국의 대통령 역할을 저버리고 자국의, 아니 자신의 이익에만 탐닉했다. 국정을 리얼리티 쇼처럼 벌이고 이벤트에 몰두한 것도 콤모두스와 닮았다. 콤모두스가 로마 제국 몰락의 서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듯, 트럼프라는 대통령의 등장과 그런 대통령이 이번에 역대 선거 2위 득표를 했다는 사실이 ‘팍스 아메리카나’ 몰락의 서곡(序曲)이라고 본다. 미국 역사상 트럼프 같은 대통령은 처음이지만 많은 유권자가 한번 편 가르기, 포퓰리즘에 중독된 이상 제2, 제3의 트럼프 대통령은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제국은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다. 로마가 콤모두스 이후에도 300년 가까이 갔듯(서로마 기준) 아메리카 제국의 추락 또한 우리 자식 대까지도 보기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대선에서 조 바이든을 대통령으로 뽑아, 더 정확히는 트럼프를 ‘대통령직에서 해고해’ 비정상을 정상화하려는 미국민의 복원력이야말로 미국을 미국답게 만드는 것이다.

바이든 시대, 미국은 다시 세계 질서 유지에 ‘개입’할 것이고, 좌충우돌 트럼프 때문에 출렁였던 세계는 보다 안정을 찾아갈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안보·대북 정책과 갈등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과는 소원하고, 중국을 가까이하면서 일본은 배척하고, 북한에만 안달하는 문 대통령의 정책은 공교롭게도 트럼프의 고립주의 한탕주의 외교정책과 맞아떨어졌다. 돌아보면 트럼프가 문재인 외교정책의 뒷배 역할을 해준 셈이다.

바이든의 동아시아 정책은 동맹을 중시하고 북한에 냉정하며 한미일 삼각협력을 유지하려는 전통적인 미국 정책으로 회귀할 것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비정상적인 외교안보 정책을 정상화하라는 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미국은 트럼프마저도 어찌해 보지 못한 미국만의 시스템으로 돌아가겠지만, 문 정권 3년 반 만에 정치 시스템이 무너져 내린 대한민국은 어쩔 것인가.

법무부 장관이라는 사람의 입에 담기도 피곤한 언행이 펼치는 일일 막장 드라마를 필두로 국정과 사회 각 분야에서 비정상의 일상화가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는 요즘이다. 그런데도 야당은 대안세력으로 희망을 주기는커녕 나라의 명운이 걸린 선거들을 앞두고도 정신을 못 차린다. 알량한 자리다툼에 혈안이 돼 중도 유권자의 표심을 흔들 ‘9억 원 이하 재산세 감면’ 같은 이슈들도 차버리고 있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희망은 국민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과연 국민은 희망인가. 아직도 적지 않은 국민은 문재인을 선택한 자신의 판단을 고수하며 다른 얘기 자체를 듣기 거부한다. 문 대통령이 옳아서 지지한다기보다는, 내가 지지하니까 옳다는 심리에 가깝다. 여기엔 권력에 대한 비판이 들어설 여지가 거의 없다. 이런 건 정치적 지지라기보다는 일종의 팬덤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나라 망친 포퓰리즘 혹은 파시스트 정권을 일으키고, 결국 망하게 한 건 이런 팬덤식 지지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박제균#트럼프#문재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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