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학창 시절 별명은 ‘대시(-, 선)’다. “바-바-바-바이든….” 말을 더듬는 게 선과 점으로 이뤄진 모스 부호를 떠올려서다.
낯선 상황이나 긴장하면 말을 더듬어 놀림의 대상이었다. 고교 1학년 때는 말더듬증 때문에 공개 발표에서 제외됐다. “다른 아이들 모두 조회 시간에 일어나 250명 학생 앞에서 발표를 해야 했지만 나만 예외였다.” 이런 대우에 대해 바이든은 마치 ‘바보’에게 씌운다는 모자를 쓰고 구석에 서 있는 것과 같았다며 수치로 여겼다.
말하기에는 머뭇거렸던 그가 스포츠만큼은 자신 있고 거침이 없었다. “스포츠는 내가 세상에서 인정받게 해주는 입장 티켓이 분명했다. 경기할 때 나는 쭈뼛거리지 않았다. 말을 더듬을 때에도 ‘나한테 패스해’라고 말했다.” 그의 자서전 ‘지켜야 할 약속’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회고다.
왜소한 체구에도 남다른 운동 능력을 지닌 바이든은 어려서부터 야구, 농구 등 여러 종목을 즐겼는데 특히 미식축구(풋볼) 선수로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다. 고교 3학년 때인 1960년 소속팀은 8승 무패로 콘퍼런스 타이틀을 안았다. 그 중심이 바이든이었다는 게 동료, 코치의 증언이다. 그가 맡은 와이드 리시버나 하프백은 순발력과 빠른 주력, 뛰어난 캐칭이 요구된다. 쿼터백의 패스를 받아 단번에 승부를 뒤집어야 하기에 순간적인 판단력도 필수. 어느새 대시는 바이든의 질주를 상징하는 별명이 되었다.
경기 도중 바이든이 쓰러져도 그의 아버지는 어머니가 아들의 상태를 확인하러 가려는 걸 막았다고 한다. “걸을 수 없는 게 아니라면 일어나라. 다시 뛰는 모습이 자랑스럽다. 결코 불평하지 말고, 결코 핑계대지 마라. 우아한 패자가 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우아한 승자가 되기를 바란다.” 바이든이 아버지에게 자주 들었다는 이야기다.
바이든과 풋볼의 만남은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됐다. 지난달 별세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럭비 정신을 경영철학에 접목한 것으로 유명하다. 뿌리가 같은 풋볼과 럭비는 영역 침투형 스포츠로 무엇보다 희생, 인내, 도전, 협동을 강조한다. 철저한 역할 분담과 팀워크, 세밀한 전략으로 거친 수비를 함께 뚫고 전진해야만 터치다운에 이를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장기 스포츠 활동이 건강과 체력뿐 아니라 올바른 인성과 리더십, 자존감을 키운다는 사실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다. 입시 위주 교육의 폐해가 심한 우리에겐 스포츠 교육에도 전환이 필요하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여러 운동에 노출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평생 스포츠에 참여할 기반이 마련된다.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남상우 박사는 “영국에선 스포츠 습관화 전략을 수립해 3∼7세 아동에게 스포츠 재정의 4분의 1을 투입한다”고 말했다. 바이든도 일찍부터 스포츠를 접했다. 리틀 야구팀에서 뛰던 그는 아마씨 기름을 먹인 글러브를 침대에 놓고 잤으며, 비로 경기가 취소되면 지구가 멸망한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야구를 소중히 여겼다.
한국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정부가 관장하는 미취학 아동 대상의 스포츠 사업이나 프로그램은 찾기 힘들다. 학교나 지역 단위 스포츠클럽 활성화도 시급하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보고서에 따르면 학교 스포츠클럽은 축구, 피구, 배드민턴 등 일부 종목의 쏠림 현상이 심하다. 많은 학생이 다양한 종목과 대회 참여 기회의 확대를 원하고 있다. 교육 효과가 큰 단체종목을 두루 접하게 해야 한다. 우수 지도자 양성도 과제다.
코로나19 사태로 운동할 기회는 더욱 줄어들고 있다. 대책 마련은 빠를수록 좋다. 뛰고 던지며 땀 흘린 학생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가 밝고 건강해진다는 사실은 분명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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