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내용은 감독의 ‘연출 의도’가 아니라 관객의 세계관에 달려 있다. 누구나 자기의 삶만큼 보는 것이다”
―정희진 ‘혼자서 본 영화’ 중
10년째 영화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 영화를 극장에 개봉시키기 위해 작품을 알리고, 보고 싶게 만드는 것이 일인데, 코로나19와 함께 예정했던 개봉작들이 무기한 연기되면서 영화 산업이 무너지는 건 아닐까 깊숙한 두려움을 느낀다. 집 근처 극장으로 마실 나가듯 영화를 보던 일상, 보고 싶은 영화의 개봉을 손꼽아 기다리며 족히 1시간은 걸리는 예술영화관을 찾던 간절한 기대. 디지털과 코로나19의 완벽한 컬래버레이션은 일상이어서 소중했던 영화적 경험을 완벽하게 앗아갔다. 다정한 암흑 속에 일시 정지와 1.5배속 빨리 감기가 없는, 스마트폰의 알람 없이 온전히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극장이 사라지면 한 편의 영화가 깊숙하게 파고들어 오는 충만한 경험은 어디서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인생의 한 부분을 잡아채고 휘둘리게 만드는 영화의 힘과 함께 감상의 본질은 관객의 삶에 있음을 밝힌다. 나는 셀린 시아마 감독이 만든 ‘톰보이’의 파란색과 짧은 머리, 축구를 사랑하는 10세 소녀 로레를 딱 나의 작고 편협한 세계만큼 이해할 수 있다. 덜컥 임신을 해버렸지만, 인생을 망치고 싶지 않은 ‘애비규환’의 대학생 토일의 소란한 마음에는 결코 닿을 수 없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자신의 경험만큼 영화를 이해하고 ‘억지네’, ‘지루하네’라고 단정하는 한 줄 평 인생을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영화 안에서 더욱 삶을 버티고 살아내려고 한다. 나의 미약한 영역을 확장하고, 사랑하는 캐릭터들의 진심에 조금이나마 가닿고 싶으니까. 오늘은 집 근처 멀티플렉스도 좋고, 조금 멀리 독립예술영화관에 가보자. 아늑한 어둠과 함께 새로운 인생을 깊숙하게 만나고 이해해보려 애써보자. 영화와 인생이 서로에게 기대어 외로움을 달래줄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