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식 변기만큼의 세대 차[권용득의 사는게 코미디]〈29〉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24일 03시 00분


권용득 만화가 그림
권용득 만화가 그림
권용득 만화가
권용득 만화가
약 6년 전, 아이가 아직 미취학 아동일 때였다. 한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아이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했다. 밥 먹는 도중에 신호가 왔던 모양이다. 그 무렵 아이에게 그 정도 뒤처리는 딱히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아내와 나는 아이에게 얼른 화장실부터 다녀오라고 했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아이가 돌아오지 않았다. 걱정이 돼서 화장실을 갔더니 하필이면 그 식당 화장실 변기가 쭈그려 앉아서 볼일을 봐야 하는 수세식 화변기였다. 난생처음 화변기를 마주한 아이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얼굴빛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게다가 화장실은 나까지 들어가기에는 비좁았고, 결국 나는 아이를 첨부한 그림처럼 번쩍 들어 올려 볼일을 볼 수 있도록 도와야 했다.

지금은 웃어넘길 일이지만 그때는 아이를 화변기 속에 빠뜨릴까 봐 안간힘을 쓰며 버텼다. 물론 그건 아이가 그전까지 화변기를 한 번도 이용해 본 적이 없어서 벌어진 해프닝이다. 내가 아이만 했을 무렵에는 우리 집뿐만 아니라 공공장소 화장실도 대부분 화변기였고, 그 당시 화변기 이용자는 편하게 앉아서 볼일을 보는 양변기를 오히려 불편해했다. 말하자면 아이와 나 사이에는 그만큼의 세대 차가 존재한다.

반면 아이는 소변도 양변기에 앉아서 본다. 아이와 내가 서서 소변을 보니까 화장실도 금세 더러워지고 냄새도 심했다. 조준을 아무리 잘해도 소변 방울은 어김없이 튀었다. 안 되겠다 싶어 아이에게 소변도 엄마처럼 앉아서 보자고 했더니 아이는 별 거부감 없이 곧바로 적응했다. 그런 아이에 비하면 나는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는데, 적응한 뒤에는 주변 남자들에게 소위 ‘앉아 쏴’ 전도사 노릇도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소변만 보려다 대변까지 같이 보는 일거양득 효과는 더러 있지만 배변 훈련이 그렇게 되어 있지 않은 탓인지 적응하기 어렵다며 결국 포기하기 일쑤였다.

문득 이건 웃어넘길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변기에서 볼일을 볼 수 없는 아이와 앉아서 소변을 볼 수 없는 주변 남자들이 악순환을 거듭하는 우리 사회 세대 갈등의 한 단면을 에둘러 보여주는 것 같았다. 어느 한쪽에게는 너무 당연한 일이 다른 한쪽에게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데, 그걸 서로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참, 이 이야기는 아이에게 충분한 동의를 구하고 게재했음을 밝혀둔다. 이 이야기를 신문에 실어도 괜찮겠냐고 물었을 때 흔쾌히 허락해준 아이에게 이 자리를 빌려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다만 아이는 왜 흔쾌히 허락했을까. 만일 내가 이 이야기를 유튜브에 올린다고 했다면, 그래도 아이는 흔쾌히 허락했을까. 아이와 아이 또래 친구들에게 신문은 익숙하지 않은 예전 매체일지 모른다. 그걸 어른들만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권용득 만화가



#세대 차이#화변기#양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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