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에 처음으로 미국 남북전쟁의 승부처였던 게티즈버그를 방문했다. 그때 세 가지 사실에 놀랐다. 전쟁터가 생각보다 굉장히 넓었다. 그 넓은 초원과 구릉이 마치 전투 직후에 냉동포장을 한 것처럼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광경은 더 놀라웠다. 마지막으로 놀란 점은 ‘현장의 재현’이었다. 3일간 전투가 벌어진 장소, 그곳에 주둔했던 부대들, 바로 저 자리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을 하나하나 따져보다 보면 하루 종일 있어도 시간이 부족할 정도였다. 정확한 자리에 표석이 세워져 있고, 박물관에는 상세한 도면과 내용이 정리되어 있었다.
현장은 생생하지만 남북전쟁은 이해하기 힘든 전쟁이다. 노예제를 둘러싼 북부와 남부의 갈등이 주원인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 노예제 폐지론이 순수한 인도주의적 열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순수한 박애정신과 인도주의, 국가주의, 지역주의, 집단이기주의, 개인의 경제적 이해관계, 정당 간의 정쟁, 산업화를 둘러싼 갈등 등 다양한 요소가 혼합되어 있다.
노예 폐지론자들은 노예제도가 궁극적으로는 백인과 국가 전체에 해가 된다는 사실을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링컨은 노예제는 인간의 기본권에 대한 인식을 타락시켜 결국에는 가난한 백인들의 인권을 위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링컨보다 반세기 전에 대통령을 지낸 제임스 매디슨은 노예제도가 백인들의 마음을 타락시켰고, 흑인과 백인 가족을 파괴했으며, 심지어 노예제로 인해 가혹해진 인간의 심성은 동물학대로까지 이어진다고 말했다.
노예제는 엄청난 땅과 자원을 보유한 축복받은 신생국의 미래에 드리워진 핏빛 구름이었다. 매디슨은 말한다. “나는 우리가 노예제도를 파괴해서 우리 자신을 불명예로부터, 우리 후손들을 노예들로 가득 찬 나라에 항상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저능으로부터 구해 내었으면 한다.”
그러나 매디슨도 자기 노예를 해방하지는 않았다. 정치인들은 자신과 지역의 이해를 위해 선동하고 지역갈등을 부추겼다. 결국 전쟁이 터졌고, 미국은 피의 교훈을 얻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니 또 잊어간다. 아니, 100년을 기억했으면 오래 기억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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