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국방장관 전성시대와 하이브리드 전쟁[글로벌 이슈/하정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25일 03시 00분


정보전, 심리전 양상이 짙은 디지털 시대의 전쟁은 지상전 위주의 과거 전쟁과 완전히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전쟁 전략과 전술의 변화가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와 맞물려 세계 주요국에서 속속 여성 국방장관이 탄생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동아일보DB
정보전, 심리전 양상이 짙은 디지털 시대의 전쟁은 지상전 위주의 과거 전쟁과 완전히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전쟁 전략과 전술의 변화가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와 맞물려 세계 주요국에서 속속 여성 국방장관이 탄생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동아일보DB
하정민 국제부 차장
하정민 국제부 차장
“전투 임무에 여성을 쓰려고 해병대를 만든 게 아니다. 체력 기준을 낮출 여유가 없다.”

2013년 제임스 에이머스 당시 미국 해병대사령관이 여성에게 전투병과 보직을 전면 개방하려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을 공개 비판하며 한 말이다. 상당수 남성 군인 또한 전쟁 현실을 도외시한다며 불만을 표했다. 찬반양론이 거셌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이 장벽을 허물었다.

7년이 흐른 지금 미국은 최초의 여성 국방수장 탄생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인사 결과야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지만 미셸 플러노이 전 국방차관, 태미 더크워스 상원의원, 털시 개버드 하원의원 등 조 바이든 행정부의 초대 국방장관 하마평에 오르는 후보가 다 여성이다. 최강대국의 안보를 책임지는 미 국방부는 군인과 민간인 합계 직원만 286만 명, 연 예산이 7215억 달러(약 800조 원)에 달하는 공룡 부서다. 1947년 설립 후 28명의 남성 장관만 거쳐 갔고 여성 차관조차 드물었던 보수적인 곳에 성별이 다른 최고책임자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주요국과 비교하면 미국에서 여성 국방장관 논의가 이제야 이뤄진다는 점이 이례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인도는 1975년 여성 국방수장을 배출했고 캐나다(1993년), 프랑스(2002년), 일본(2007년), 독일(2013년), 이탈리아(2014년), 호주(2015년) 등과 비교해도 늦다. 2020년 11월 현재 기준으로도 독일 프랑스 스페인 호주 인도 덴마크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의 국방수장이 모두 여성이다. 특히 독일 프랑스 스페인은 현 장관의 전임자 또한 여성이었다. 이들의 절대 다수는 군 복무 경험이 없고 장관이 되기 전 의사, 법조인, 관료 등 아예 다른 직업을 가졌다.

그런데도 왜 각국에서 속속 여성 국방장관이 탄생할까. 물론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가 가장 큰 요인이겠으나 이에 못지않게 주목해야 할 사안이 하이브리드 전쟁(Hybrid Warfare)의 일상화다. 해킹, 가짜뉴스, 거짓정보 등이 기존 무기 못지않은 파괴력을 지니고 정규군과 비정규군, 군인과 민간인, 전시와 평상시의 구분이 사라진 현대전의 양상을 일컫는 용어다. 재래식 무기와 해킹 등 전통 전쟁에서 잘 쓰이지 않았던 행위를 더해 적을 공격한다는 의미에서 복합 전쟁, 비(非)대칭 전쟁으로도 불린다.

대표적 예가 올해 9월 27일 시작돼 이달 10일 끝난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의 전쟁이다. 양측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국 병사가 희생되는 장면을 여과 없이 공개하며 자국민의 전투 의지를 자극하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으려 애썼다. 또한 두 나라 모두 드론을 주요 무기로 썼다. 인구와 군사력에서 앞서는 데다 성능이 우수한 터키제 드론을 앞세운 아제르바이잔은 공중에서 아르메니아 탱크와 보병 전투차량을 무참히 분쇄했다. 손쓸 틈 없이 당한 아르메니아는 실효 지배하던 땅의 상당 부분을 넘겨줘야 했다.

즉, 21세기 전쟁의 성패는 양측 군인 간의 지상 총력전이 아닌 사이버 여론전, 드론 등 최첨단 정보기술(IT)이 좌지우지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군인을 양성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기존의 교육 및 훈련 방식으로는 현대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으며 완전히 새로운 사고와 발상의 대전환을 이뤄내야 한다는 절박함이 사격 훈련 한번 해보지 않은 여성 국방수장의 탄생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여러 이해관계자의 미묘한 심리 분석, 국제공조 구축, 민간인과의 협력 강화 등 여성이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가 늘어났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문화인류학계의 명저인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역시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대 미 국방부가 대(對)일본 심리전을 위해 요청한 자료를 바탕으로 탄생했다. 널리 알려진 대로 베네딕트는 평생 일본을 단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지만 자살특공대 가미카제 등 서구 관점에서 이해하기 힘든 일본인의 정서를 현미경처럼 낱낱이 해부해 미국의 승리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는 평을 얻고 있다. 여성 특유의 꼼꼼함과 세밀함이 전쟁 승리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보여주는 사례이자, 여성 국방장관 전성시대를 이미 70여 년 전 예고한 신호가 아니었을까.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여성#국방장관#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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