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또 다른 여인 려심[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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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1일 노동절 경축공연 때 무대에 나선 역도 김은국 선수의 뒤로 은하수관현악단 피아니스트 려심의 모습(왼쪽 뒤편)이 카메라에 잡혔다. 사진 출처 조선중앙방송 캡처
2013년 5월 1일 노동절 경축공연 때 무대에 나선 역도 김은국 선수의 뒤로 은하수관현악단 피아니스트 려심의 모습(왼쪽 뒤편)이 카메라에 잡혔다. 사진 출처 조선중앙방송 캡처
주성하 기자
주성하 기자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가 10개월째 사라졌다. 과거 김정은의 대다수 현지 시찰에 함께 다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행사장에도 이설주는 보이지 않았다.

그가 전 세계가 공인하는 김정은의 공식 부인이고, 둘 사이에 아이도 셋이나 있다고 알려졌기에 숙청됐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병을 앓거나 또 아이를 낳았거나 혹은 어린 자녀들을 돌보는 데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지만, 단정할 수는 없다.

이설주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누구보다 더 궁금한 게 바로 북한 사람들이다. 이미 집에서 “원수님 부인은 어디 갔을까” “새 여자가 생긴 것은 아닐까” 등 각종 추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함경북도 청진 사람들은 이런 것에 더 민감하다. 1970년대 초 함북 도안전부 전화교환수였던 김영숙이 평양에 뽑혀 올라갔고, 몇 년 뒤 청진공산대학 간부였던 부친과 가족 모두 평양으로 이주했다. 사람들은 “청진에서 김정일 장군님의 부인이 나왔다”고 좋아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갑자기 고용희란 여성이 부인이라 등장하고, 그의 아들 김정은이 후계자로 나타났다. 그래서 사람들은 “장군님은 여자를 여럿 거느리고 있구나”라며 수군거렸다.

요즘 청진에는 또다시 비슷한 이야기가 돌고 있다. 바로 청진에서 나서 자란 려심이란 여인 이야기다. 려심은 ‘김정은의 저택에 들어간 여자’로 소문이 났다. 이는 곧 김정은의 여인으로 간택받았다는 뜻이다. 간부들 사이에선 “딸을 낳으려면 려심이 같은 딸을 낳으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1989년생으로 알려진 려심은 이설주와 동갑 또는 한 살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부모는 북송 재일교포 출신이다. 포항구역 김일성동상 옆 8층 아파트 2층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알려졌는데, 청진에선 가장 요충지에 있는 아파트다.

려심의 아버지는 외화벌이 관련 일을 했는데, 일찍이 당뇨병에 걸려 치료비를 많이 쓰다 보니 집이 가난했다고 한다. 물론 일본에 친척이 있는 귀국자치고 가난했다는 뜻이지, 밥술은 뜨고 사는 집이었다.

고용희도 그러했지만 귀국자들은 자녀를 예술 쪽으로 교육시킨다. 북한에서 귀국자는 출신 성분이 걸려 당 간부도 할 수 없고 보위부, 안전부와 같은 권력기관에도 못 들어가니 그나마 인정받기 위해 선택하는 고육지책이라 할 수 있다.

려심도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배웠는데, 천부적인 능력을 보여 청진예술학원을 다니던 10대 중반에 조선인민군예술학원에 뽑혀 올라갔다. 당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미모가 뛰어났고, 성격이 밝고 예의바르고, 가정교육을 잘 배운 재간둥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평양에 올라간 려심은 어느 날 은하수관현악단 피아니스트가 돼 TV에 등장했다. 김정은과 결혼하기 전 이설주가 이 악단에서 가수로 있을 때 려심은 뒤에서 피아노를 쳤다. 시간이 좀 흐르자 려심의 집안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부모들이 평양에 올라가고 청진에 남아있는 외삼촌, 고모들이 ‘교시아파트’라고 불리는 청진의 최고급 아파트로 이사 간 것이다.

2011년 김정일의 마지막 러시아 방문 때 려심도 동행했다. 그러자 청진 사람들은 그녀가 김정일의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선 그의 가족과 친척이 받은 특혜를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김정일이 사망한 뒤에도 려심의 가족에 대한 특혜는 계속 이어졌다. 그래서 이런 소문이 또 퍼졌다.

“원래 김정은이 려심과 결혼하려 했는데, 김정일이 ‘어머니도 귀국자 출신인데, 아내까지 또 귀국자 출신을 들일 순 없다’고 완강히 반대해 이설주가 대신 부인으로 선택됐다.”

려심의 외삼촌과 고모는 지난해까지 여전히 청진에서 잘살고 있다. 이걸 보면 려심은 아직까지 김정은 옆에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김정일이 피아니스트 김옥을 마지막까지 곁에 두었듯, 김정은도 미모의 피아니스트에게 끌리는 피를 물려받았을지 모른다.

어찌 됐든 려심이 김정은 옆에 있다면 가장 신경이 쓰이는 사람은 이설주일 것이다. 김정일이 여러 여성에게서 자식을 두었듯, 려심도 김정은의 아이를 낳지 말라는 법이 없다. 나아가 김정일의 마지막 여자인 고용희가 최후의 사랑을 쟁취해 성혜림과 김영숙을 밀어낸 것과 같은 일이 또 벌어질지 누구도 알 수 없다. 려심은 이제 겨우 30, 31세에 불과하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김정은#북한#이설주#려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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