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하는 시간[이은화의 미술시간]〈138〉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26일 03시 00분


이리외 올릴라, 숙제 듣기, 1923년.
이리외 올릴라, 숙제 듣기, 1923년.
“숙제 다 했니?” “숙제부터 하고 놀아!” 학교 다니는 아이를 둔 부모라면 입에 달고 사는 말일 게다. 세상에 숙제를 잘하는 아이는 있어도 숙제를 좋아하는 아이는 없을 것이다. 핀란드 화가 이리외 올릴라는 숙제를 둘러싼 엄마와 아이 사이의 갈등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림 속 엄마는 거실 소파 끝에 앉아 아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다. 학교에서 책 읽기 숙제가 나온 모양이다. 검은색 교복을 입은 소년은 집중하기는커녕 딴생각에 빠진 듯 먼 데를 응시하고 있다. 밖에 나가 친구들과 뛰어놀 궁리 중일 수도 있고, 읽기 수업 시간에 창피를 당할까 봐 걱정하는지도 모른다. 책에 시선을 고정한 엄마의 표정도 좋지는 않다. 옷의 한쪽 어깨 부분이 흘러내린 것도 모를 정도로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

1887년 헬싱키에서 태어난 올릴라는 회화, 디자인, 벽화 등 다양한 분야에 능했다. 국비 장학생으로 떠난 프랑스에서 인상주의를 배워 귀국한 후 핀란드의 인상주의 그룹을 창립해 활동했다. 하지만 극장 설립을 주도하다 파산하는 바람에 1920년 가족과 함께 다시 파리로 떠나야 했다. 가족 부양을 위해 무대 세트나 벽지 디자인 일을 했고, 동료 화가이자 아내였던 릴리는 인공 꽃과 장례식 화환 만드는 일을 했다. 이 그림은 바로 그 시기에 그려졌다. 그림 속 모델은 화가의 아내와 아들로 보인다. 당시 아들은 프랑스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외국인 가정의 자녀로 친구들보다 프랑스어를 읽고 쓰는 데 어려움이 컸을 테고, 아이 숙제를 봐줘야 하는 일하는 엄마의 고충도 상당했을 것이다.

예술적 성취보다 아이 교육을 택했던 걸까. 아들이 프랑스인으로 자라는 게 싫었던 부부는 7년간의 파리 생활을 청산하고 핀란드로 돌아갔다. 고향에서 올릴라는 화가와 벽화가로 이름을 날렸고, 1932년 핀란드 국립극장 벽화로 최고의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이때 노출된 여러 염료와 색소 중독으로 그해 11월 세상을 떠났다. 45세 아빠였고, 귀향 5년 만이었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이리외 올릴라#숙제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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