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어제 2박 3일의 방한을 마치고 귀국했다. 왕 부장은 짧은 일정에도 한국 대통령부터 국회의장, 전직 여당 대표까지 두루 만났다.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 25분이나 지각하는 결례도 범했다. 그의 방한을 계기로 양국 간엔 폭넓은 협력 방안이 논의됐다지만 중국의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 해제 같은 핵심 현안에서는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왕 부장 방한 목적은 미국의 정권 교체기를 맞아 주변국 분위기 탐색과 외교적 관리를 위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듯하다. 중국 측은 양국 간 합의라며 10개 항을 열거했지만 거기에 핵심 의제는 없었다. 왕 부장은 시진핑 국가주석 방한에 코로나19 완전 통제라는 조건을 내세웠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는 “적절히 처리해야 한다”며 철수를 압박했고, 그 보복 조치인 한한령 해제 요청에는 “지속적 소통을 희망한다”고만 했다.
중국은 그간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전방위 공세에 시달려왔다. 조 바이든 시대에도 그런 미중 긴장은 계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중국으로선 미국의 동맹인 한국과 일본이 반중(反中) 전선에 서지 않도록 주변국 외교에 부쩍 공을 들이고 있다. 이번에도 새삼 한중일 경제통합을 강조하며, 미국의 중국 정보기술·기업 퇴출에 맞선 ‘글로벌 데이터안보 이니셔티브’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했다.
바이든 시대의 미중 관계는 아직 예단하기 어렵다. 규범과 가치를 앞세운 바이든식 국제주의는 트럼프 시절의 무역전쟁 같은 거친 방식이 아닌, 치밀한 제도적 포위망으로 중국을 옥죌 가능성이 높다. ‘민주주의 정상회의’ 같은 가치연대 구상은 한국을 더는 피하기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만들 수 있다.
왕 부장은 “이 세계에 미국만 있는 게 아니다”고 했다. 한국을 향해 미국 편에 서지 말라는 압박일 것이다. 동아시아에도 중국만 있는 게 아니다. 자국의 거대시장 접근을 제멋대로 막고 풀며 치졸한 외교를 계속하는 한 중국은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중국에서 누구든 방한할 때마다 ‘황제 칙사처럼 구느냐’는 얘기가 왜 나오는지 중국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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