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택시를 탔다가 가벼운 접촉사고가 있었다. 불편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 집으로 돌아왔는데 자고 난 후 목이 결리고 뻣뻣해져 곤욕을 치렀다. 처음에는 멀쩡하다가 나중에 통증이 심해지는 이런 증상을 한의학에서는 어혈증(瘀血症)이라고 한다. 어혈은 생리적인 혈액이 타박이나 생리 스트레스 등에 의해 생기는 노폐물의 일종이다. 흔히 죽은피를 의미한다.
조선시대 교통사고의 주원인은 낙마였다. 낙상으로 인한 어혈은 조선 건국이 가능하게 했던 역사의 분수령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고려 공양왕 재위 4년인 1392년 3월 이성계는 사냥에 나섰다 말에서 떨어졌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수도 개성에서 멀리 떨어진 벽란도에서 꼼짝 못하고 몸져누웠다. 공양왕과 이색, 정몽주는 이 틈을 타 이성계 일파를 탄핵해 삭탈관직하고 유배를 보냈다. 정몽주는 병문안을 가장해 이성계의 상태를 살피러 갔다가 선죽교에서 이방원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고려 정국을 주무르던 이성계에게 공양왕이 반격을 도모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낙상 후유증(어혈증)이 그만큼 심했기 때문이다.
특히 인조의 어혈증은 심각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인조는 “어렸을 적에 여러 차례 말에서 떨어져 다친 뒤로 대변을 볼 때마다 피가 서너 숟갈 혹은 한두 숟갈 정도 나왔는데 혹 이 때문에 어혈이 생겨 그런 것은 아닌가 걱정된다”고 했다.
치료 방법도 지금 시각에서 보면 엽기적이다. 영조는 화장실에 갔다 넘어져 다리에 어혈이 생기자 개의 쓸개인 구담(狗膽)을 먹었다. 그래도 효험이 없자 어의들은 어린 아이의 소변(동변·童便)을 처방했다. 어혈증이 그만큼 무서운 질환이었다는 방증이다.
어혈은 여성의 분만과도 관련이 깊다. 인조 24년 왕세자 빈궁이 출산 후 배가 너무 아프다고 호소하자 어의들은 “산후에 어혈이 있을 때 으레 나타나는 증세로, 어혈이 미처 다 풀리지 않은 탓이니 궁귀탕을 아침과 저녁 두 번 복용해야 한다”고 진단하고 처방했다.
어혈증이란 병명 속에는 현대의학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한의학만의 독특한 병리관(病理觀)이 담겨 있다. 어혈의 어(瘀)는 더럽고 찐득하다는 뜻으로, 이런 죽은피가 순환장애로 인해 정체돼 있는 상태를 말한다. 어혈이 생기는 원인은 낙상으로 인한 타박상이 가장 많고 월경불순으로 인한 혈액의 정체나 산후의 오로(惡露), 냉방이나 운동 부족으로 기(氣)와 혈(血)이 정체해 엉기는 것, 심한 화병의 후유증도 그 원인 중 하나다.
한의학에서 어혈은 무거운 혈에 속하기 때문에 주로 신체 하부인 하복부나 하지에 몰린다. 하부 순환장애는 상부로 체내의 기와 열을 오르게 한다. 이 경우 머리가 개운하지 않고 기억력이 희미해지며 심장이 두근거리고 수면의 질이 나빠지고 입에 구갈증이 생긴다. 하부 순환장애는 하복부가 차고 허리와 다리가 냉해지고 저리며 멍이 잘 들고 실핏줄이 드러나며 피부색이 푸르거나 어두워진다.
한의원에서 자락을 하거나 부항으로 피를 뽑는 것은 대부분 이런 어혈 증상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 많다. 동의보감은 홍화 꽃, 좋은 식초, 말린 옻, 복숭아 씨, 굼벵이, 홍시 등을 일반적으로 구할 수 있는 어혈에 좋은 약재로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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