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28일. 서울중앙지검 13층 회의실에서는 이른바 ‘세월호 참사 보고 시각 조작 사건’에 대한 검찰의 비공식 수사 결과 브리핑이 있었다. 검찰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청와대 관저 내실에서 첫 보고를 받고 최순실 씨와 대책회의를 했다는 사실을 처음 공개했다. 또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첫 보고를 받은 시점도 20분 앞당겨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대통령이 연가 사용 없이 평일에 관저에서 휴식을 취하다 비선 실세와 상의한 뒤에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했다는 점은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이 사건 수사는 2017년 10월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캐비닛에서 “국가안보실 전산파일에서 세월호 사고 당일 상황보고 일지를 사후에 조작한 자료가 담긴 파일 자료를 발견했다”며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에 대해 수사를 의뢰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긴급 브리핑을 갖고 “가장 참담한 국정 농단의 표본적인 사례”라고 비판했다.
검찰은 5개월간의 수사 끝에 김 전 실장 등 관련자들을 허위공문서 작성 및 위증 등으로 기소했고 이후 정부는 사회적 참사 특별위원회와 검찰 특별수사단을 출범시켜 ‘박근혜 7시간’에 대한 주변 의혹까지 샅샅이 조사 중이다.
2년 8개월 전의 일이 떠오른 것은 1일로 70일을 맞는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원 이모 씨(47) 피살 사건 때문이다. 피격된 이 씨의 친형 이래진 씨는 10월 28일 청와대를 상대로 이른바 ‘대통령의 10시간’과 관련해 피격 당일 대통령 행적에 대한 정보 공개를 청구했다.
하지만 청와대의 대응은 캐비닛의 먼지 쌓인 3년 전 문건들을 찾아내 수사를 의뢰한 ‘세월호 7시간’과는 180도 달랐다. 청와대는 이 씨가 정보 공개를 청구한 지 거의 한 달이 지난 11월 24일 통지문을 보냈다. 서훈 국가안보실장의 명의로 된 통지문에서 청와대는 “귀하께서 요청하신 자료는 공공기관 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 제1항 제1, 2호에 따라 공개할 수 없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한 줄로 이 씨의 정보 공개 요청을 일축했다. 대통령 일정은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기 때문이라는 게 청와대가 밝힌 비공개 사유다.
이번 사건이 한밤중 북한 영토에서 벌어진 일이라 군 당국이 실시간 대응하기 어려웠다는 청와대의 설명은 이해할 만한 대목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군의 대응과 별개로 국정 컨트롤타워인 청와대가 우리 국민이 목숨을 잃은 사건에 어떻게 대응했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문 대통령도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쓴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세계 최강국인 미국 대통령은 1분 1초까지 일과가 공개된다. 대통령은 24시간 언제든 어떤 상황이 벌어지든 대응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라고도 밝혔다. 그러면서 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에 대해 “대통령이 몇 시간 동안 상황 파악도 제대로 못 하고 제대로 보고도 받지 않고 스스로 무언가를 판단하고 행동할 수 없었던 것, 그건 일종의 안보 공백”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10월 초 피살된 이 씨 아들의 편지에 답장을 보내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진행하고 진실을 밝혀낼 수 있도록 내가 직접 챙기겠다는 것을 약속드린다”고 했다. 하지만 해경은 선박 1300여 척과 항공기 230여 대를 동원해 41일간 시신 수색작업을 벌이고도 아직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의 약속이 무색해졌지만 청와대는 공동조사 요구를 일축한 북한을 바라보며 “기다려 달라”는 대답뿐이다. 하지만 언제든 공개할 수 있는 ‘대통령의 10시간’의 행적을 꽁꽁 싸매둔 청와대가 바라볼 곳은 북한이 아니라 청와대 자신이다. ‘감출수록 드러난다’는 게 세월호 7시간이 남긴 교훈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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