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9월 운동을 하다 허리를 삐끗해 정형외과를 찾았다. 휴식하면 낫는다는 단순 근육통(염좌)이었는데 상담실에서 만난 병원 직원은 책자를 보여주며 각종 주사를 이용한 시술을 안내했다. 실손보험이 적용돼 본인 부담금이 없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도수치료도 권했다. 10회를 받으면 할인까지 해준다고 했다. 이렇게 받는 시술비는 고스란히 실손보험 가입자들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6일 손해보험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9월까지 손해보험업계의 실손보험 보험금 지급액(발생손해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6조7500억 원)보다 10.7% 증가한 7조4745억 원으로 집계됐다. 손해액이 늘어나면서 실손보험 손실액은 지난해 3분기 말 1조5921억 원에서 올해 3분기 말 1조7383억 원으로 불어났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손실액이 2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이 확대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의료기관 이용자마저 줄었는데도 실손보험 손실액은 불어난 것이다. 실손보험 손실이 개선될 것이라는 손해보험업계의 예상과도 동떨어진 결과다.
제2의 건강보험이라 불리는 실손보험 손실이 해마다 불어나는 건 다수가 분담하는 보험을 악용하는 소수의 가입자들 때문이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실손보험 전체 가입자 중 95%가 보험금을 아예 청구하지 않았다. 연평균 100만 원 이상 보험금을 탄 가입자는 전체의 2∼3%였다. 심지어 보험금을 탄 가입자 중 상위 10%는 연평균 600만 원을 받아갔다. 이는 전체 지급 보험금의 절반가량인 48.5% 정도다. 보험 가입자 열 명 중 한 명이 전체 보험금의 절반을 빼간 셈이다.
동네병원의 과잉 진료도 실손보험 구조를 악화시킨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상반기 의원의 실손보험 비급여 진료 청구금액은 1조1530억 원으로 2017년 상반기(6417억 원)에 비해 79.7% 늘었다. 비급여 진료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실손보험이 통상 보장한다. 병원이 비급여 진료 수가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어 실손보험 손해율 악화의 주범으로 꼽힌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회와 정부는 실손보험의 도덕적 해이를 차단할 대책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 상황을 방치하면 보험사는 불어나는 실손보험 손실액을 근거로 보험료 인상을 요구하고 선량한 가입자만 손해를 보게 된다. 정부는 보험료와 의료기관 이용량을 연계하는 식의 실손보험료 차등제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처럼 소수가 다수에게 피해를 주는 도덕적 해이를 방치하면 실손보험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 결국 소비자 손실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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