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딸 방에 들어갔다가 일기장에 적혀 있는 글귀를 보게 됐다. 몰래 보려고 했던 건 아니고 다이어리가 펼쳐져 있길래 궁금한 마음에 고개를 숙이고 읽었는데 심각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매일 온라인 수업만 하니까 지겹다. 학교에 가서 친구도 만나고 때론 다투기도 하고 화해도 하고 그렇게 지내야 더 친해지는데 온라인에서만 만나니까 아무런 감정의 변화가 없어서 심심하다. 매일 학교에 갈 때는 친구들과 티격태격하던 감정이 소중한지 몰랐는데, 학교도 안 가고 친구도 안 만나니까 할 말도 없고 하루하루 감정이 메말라 가는 것 같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중학생 자녀를 둔 친구에게 상담을 하려고 전화했더니 그 친구도 비슷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우리 딸은 중1인데 학교를 자주 안 가니까 친구를 사귈 수가 없어서 매일 집에서 SNS만 하고 친구도 SNS에서 사귀려고 모르는 사람들한테 쪽지 보냈다가 엄마한테 혼나고, 난리도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맘대로 하라고 그냥 둘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 이놈의 코로나19 도대체 어디까지 망칠 셈이냐! 가정도 힘들지만 회사에서도 힘든 건 마찬가지다. 다 같이 모여 회의를 하면서 의견 대립도 있고, 좋은 의견이 나오면 박수도 쳐주고, 결혼하는 직장 동료가 있으면 악수도 해주고, 퇴근 후에 소주잔도 부딪치고, 삼삼오오 노래방에 가서 목이 터져라 노래도 부르고, 삐걱거리는 몸이지만 춤도 추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야 사는 맛이고, 함께하는 맛인데, 이 모든 것들을 빼앗겨버렸다. 미팅도 화상으로 진행하고 회의도 서면으로 대체하고, 회식은 언제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래도 어른들은 감정이라는 걸 조율할 수가 있다. 물론, 감정을 조율하지 못해 가만히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에 화분을 던지는 어른도 있고, 대중교통 기사들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어른도 있다. 이 모든 게 스트레스와 감정이 쌓이기만 해서 생긴 문제인 듯하다. 무엇이든 쌓아두기만 하면 언젠간 넘치기 마련이고, 쌓여서 폭발하는 날에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건으로 번지게 된다. 어른들도 힘든데 감정 조율에 서툰 아이들은 얼마나 힘이 들까. 평소 학교 같으면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장난도 치고, 체육시간에는 운동장에 나가 뛰어놀기도 하며 감정을 표출한다. 그런데 모든 걸 온라인으로 하고, 친구들과 소통도 없고 감정의 교류도 없이 스트레스가 쌓이기만 하니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서서히 잦아들 것 같았던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이 어려운 시기를 더 오래 겪어야 하고, 더 오래 견뎌야 할지도 모른다. 맑은 날이 계속되면 사막이 되는 것처럼 아무런 감정의 변화 없이 스트레스를 쌓아두기만 한다면 우리 마음과 사람 사이는 사막처럼 메마를 것이다. 맑은 날이 기분 좋은 건, 비 오는 날도 있고 바람 부는 날도 있고, 안개 낀 날도 있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과 감정을 나누기 힘들어도 나눠야 하고, 집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노래를 부르는 한이 있어도 스트레스는 풀고 살아야 한다. 다시 일상을 찾으려면 우리는 견디고 이겨내야 한다. 인디언 속담에 있는 ‘no rain, no rainbow’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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