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가장 무서운 적[임용한의 전쟁史]〈139〉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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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년 6월 24일, 어느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일찍이 본 적이 없는 찬란한 군대가 행진을 시작했다. 나폴레옹이 지휘하는 러시아 침공군이었다. 병력은 최소 30만 명. 프랑스뿐만이 아니라 나폴레옹의 통제하에 있던 유럽 여러 나라에서 징집한 유럽연합군이었다.

휘황찬란했던 군대는 러시아 땅에서 처참하게 몰락한다. 20만 명 이상이 죽었다. 나폴레옹은 리투아니아 빌뉴스에 도착하자 군기를 모두 불태우고, 소수의 호위병과 함께 파리로 먼저 도주했다. 명분은 파리에서 발생할지 모르는 쿠데타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가 떠나자마자 기온이 급강하하면서 잔류한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얼어 죽었다. 나폴레옹의 완전한 몰락까지는 3년이 남았지만, 역사가들은 나폴레옹의 운명은 러시아 원정의 실패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조심하시오. 러시아의 땅이 당신네 군대를 삼켜버릴 것이오.” 러시아인들은 항상 자신들의 최고의 무기는 러시아의 광활함, 그 자체라고 말하곤 했다. 여기에 더위와 추위가 겹치고, 대다수가 농민인 러시아인들은 자신들의 국가와 땅을 지키는 데는 비상한 헌신과 단결력을 발휘하곤 했다.

나폴레옹이 이런 요소를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런데 왜 이런 위험한 원정을 감행했던 것일까? 나폴레옹이 이룩한 제국은 아직 불완전했다. 그는 정복한 나라들의 충성심이 부족한 이유로 영국과 러시아의 존재를 꼽았다. 두 나라가 존재하고 충동질을 계속하는 이상, 자신의 제국은 불온한 반심(叛心)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 판단까지는 옳았다고 하더라도, 나폴레옹이 전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것이 실수였다. 당시의 군사력으로 러시아 정복은 무리였기 때문이다. 나폴레옹도 그것을 알고 있었고, 그 내면의 두려움이 거듭된 실수를 유발하면서 피해를 몇 배로 키웠다.

효과가 없는 방법인데, 위대한 독재자는 그 해결책에 집착했다. 권력은 스스로 자신을 소외시킨다. 그리고 자신이 성공했던 방식으로 자신을 파멸시킨다. 리더에게 제일 무서운 적은 바로 자신의 권력이다.
 
임용한 역사학자
#나폴레옹#러시아 침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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