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이 아동학대 신고해야 비극 막는다[현장에서/조응형]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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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아 학대 치사 혐의를 받는 엄마가 지난달 11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이송되고 있다. 뉴스1
입양아 학대 치사 혐의를 받는 엄마가 지난달 11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이송되고 있다. 뉴스1
조응형 사회부 기자
조응형 사회부 기자
“(학대가) 의심스러워 모든 검사를 진행했어요. 복부와 뇌 컴퓨터단층촬영(CT), 전신엑스레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죠.”

10월 아동학대로 숨을 거둔 16개월 입양아의 부모들이 결국 8일 재판에 넘겨졌다. 결과는 지켜봐야겠지만 검찰에서 드러난 만행은 욕지기가 치밀어 오른다. 당시 응급실에 온 아이는 여러 뼈가 부러진 건 물론이고 내장이 파손됐을 정도였다. 병원 측 표현을 빌리자면 “대형 교통사고급”이었다.

의료진은 처음부터 ‘아동학대’를 의심했다고 한다. 뚜렷한 병력도 없는데 심 정지 상태로 왔고, 택시를 타고 온 엄마는 너무 태연했다. 심지어 심폐소생술이 진행되며 생사를 오가는데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 병원은 곧장 112에 신고했다.

하지만 뇌·복부 CT 등은 학대가 의심된다고 곧장 진행할 수 있는 검사가 아니다.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시 검사를 지시하고 부모에게 강력히 동의를 요청했던 A 의사는 “상태가 심각했다. 어쨌든 부모가 동의해줘서 검사를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의심 정황이 많아도 의료진이 맘대로 결정할 수가 없다”고 전했다.

이런 검사가 무슨 소용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결국 아이는 떠났으니까. 하지만 당시의 검사 자료는 이후 부검 결과가 나오기 전에 아동학대를 가늠하는 중요 단서가 됐다. 전신 X선 사진을 찍어둔 것도 다양한 부위에서 학대 피해를 입었음을 증명했다.

게다가 병원이 아동학대를 신고하는 것도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아동학대처벌법상 의료인은 신고 의무자로 정해져 있어 학대가 의심되면 반드시 신고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부모가 반발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아동학대 신고 3만8380건 가운데 의료인 신고는 293건(0.8%)뿐이었다.

“가령 아이에게서 골절이 발견되면 보호자가 ‘실수로 떨어뜨렸다’고 해명해도 신고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보호자에게 신고 사실을 알려야 하는데, 거의 대부분 거칠게 화를 내죠. 세상에 100%란 없다 보니 우리 정서상 망설여지는 게 현실이죠.”(B 의사)

검찰은 양부모를 기소하며 ‘아동학대사건관리회의’ 결과를 발표했다. 일종의 재발방지 대책이다. 아동학대 의심 환자의 진료기록 공유와 관련 신고의무자 고지제도 도입 등이 논의됐다고 한다. 고지제도란 이후 아동학대가 인정되면 교사나 담당공무원 등 모든 신고의무자에게 “당신은 신고할 의무가 있었다”고 알려주는 걸 일컫는다.

이런다고 아이는 돌아오지 않는다. 의료진의 검사나 신고 역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일지 모른다. 하지만 작은 틈새를 막는 것도 또 다른 희생을 막을 최소한의 장치가 돼줄 수 있다. 살릴 수만 있다면 좀 과해도 되지 않을까. 지금도 어디선가 도움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다.
 
조응형 사회부 기자 yesbro@donga.com
#아동학대#의료인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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